그제 카드로 결제하기 위해 지갑을 분명히 썼는데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카드 분실 신고를 해야 되나 하고 하루 내내 여기 저기 뒤져 보면서 찾아도 나오지 않는데

분명 컴퓨터앞에서 썼던 기억이 있고 그 다음 갖고 나가지 않았으므로

안에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거의 시간마다 발작적으로 여기저기 있을 법한 데를 찾아 보았는데 보이지 않으니

풀리지 않는 퍼즐 처럼 나중에는 중독이 된다..편집증인가..

잠도 잘 안 오고 정말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기억을 다 더듬어 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오늘 아침 그런데 찾았다...

어처구니 없는 곳에서 찾았는데,

문제는 세상사가 이렇지 않나 싶다.

사실 지갑이 늘 내게 있을 때는 그다지 감상을 느낄 겨를이 없다.

카드나 신분증이나 기타 도서관 대출카드 복사카드 따위인데.

오늘 아침에야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다..그 동안 어떻게 거기에있었던 거니,,흑흑,,


거기에 가있던 줄거리는 또 달리 있지만,

그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늘 자신 주변에 있어서 고마운지 좋은지 가치를 모르고 지내는 것이 많은데,

그렇게 꼭 한 번 씩 없어지고 나서야 그것의 가치를 알고,

또 자신에게 없는 것들만 애써 찾고 또 찾는 버릇이 문제다.

그러니까 지갑이 없어졌어도 역시 같은 문제다.

없어졌지만, 이미 있는 것들을 가지고 감사하게 지내야 하는데,,그렇지 못하다.

사실은 분명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너무 이상한 퍼즐 같아서 계속 매달리기는 했지만,

여하튼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모두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실 찾으니 너무 상쾌하다. --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는 데 퀴즈 푸는 프로그램 때문에
무언가 공부하는 꿈을 꾸다 깼다.

하나도 맞추지 못하는 문제를 척척 푸는 출연진들을 보며
사실 공부에는 끝이 없고
저런 프로에 나오려면 백과사전을 놓고 공부를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다.

또 다음 프로를 보니 아주 진귀한 골동품을 놓고 진품을 가리고 그 값을 따진다.

알게 무언가..

그러나 세상은 모든 분야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어느 한 분야도 적당히 알아서 사용할 만한 지식은 있지 않다.

또 각 분야에서 최고만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얼마나 아득한가.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는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카메라를 바라 봐도 그렇다.

빛과 렌즈에 대해얼마나 연구를 해야 저런 기계를 만들 것인가.

지금은 거의 사양산업이 되었지만, 과거 필름을 만든 나라는 몇이었는가..

우리나라가 많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모든 산업에서
그 최극단을 달리지 못한다면,

사실은 통일도 멀고, 번영도 멀고 복지의 완성도 문화의 발달도 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지친다.

저 그림은 최선을 다하자는 뜻이지만, 최선을 다해 정성들여 만든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생각으로 즐겁게 프로그램을 가지고 극적극적 한 것이다.

결국은 즐겁게 계속 하고 하면 최선 최고로 좋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같은 결과를 고통스럽게 행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비극이다.

그러나 물론 저 작품?은 최고 최선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 장난 수준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몰라도 다른 이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자신도 즐겁고 남에게도 의미있으려면 최선을 다해 잘한다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필요한 요소를 모으고 모으다 보면

선한 뜻의 실현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만나게 된다.


>>>
출발은? 역시 즐겁게 자주 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최선을 만들고,

그래서 최선의 결과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그리고 불행할 때는 행복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그러나 그 당면 문제의 해결이 급한 것이지
행복의 일반론을 쓰거나 읽으면서 그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겨를이 없게 몰리게 된다.


이 사이에서 행복론은 모두 외면 당하게 된다.

행복을 무슨 글을 읽어서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인식도 한 몫한다.

누구나 행복을 느끼고 느낄 수 있고 그저 생활이지,
그것을 읽고 문제의식을 갖고 연습하고 개선 변화시키고 그렇게 해야 할 그런 내용은 아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행복론을 주제로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적어도 행복론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서 각 개인의 행복과 관련되지 않는 문제는 거의 없다.

모든 세상의 문제가 사실은 개인의 행복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행복론은 모든 논의를 포함시킬 수도 있다.

다만 범위를 한정해야 하기에 그 모든 논의가 행복론에 들어오지 않는 것 뿐이다.



지금 행복론을 다시 정리해서

써야 하는 입장에서

쓰는 이는 지극히 불행하고 번뇌를 느끼고 복잡하다.

본인이 행복하지 않는데 그러나 써야만 한다고 느끼는 이상한 행복론이 되버리는 것이다.



파일을 정리하고 관련 자료를 봐야 하고,
지금 당장은 문제의식이 없어도 목차에 올려져 있으면
다시 생각을 해 봐야 하고,,,
















▣[제목]▣

● 만족과 희망

○ 하루를 가득 채워야 할 것-만족과 희망의 좋은 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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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만족과 희망]


오늘 하루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무엇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하는가?

그러나 당장 부딪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그런데 사실은 가득 채우고 싶은 희망에서도 발견된다.

정말 뜻대로 되면, 우선 당장은 좋겠지만, 생각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뜻대로 안 된 것이 너무나 다행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단히말하면 그 성취로 인해 뒤에 생겨날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렇든 안 그렇든
사람은 앞의 질문에 여러 가지 방면에서 고민하게 된다.

무엇을 성취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는 상황의 고민,
희망이 없어서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다는 상황

희망이성취가 뜻대로 안되는 현실,

희망의성취가 된 경우에는 뜻이 성취되어서 나타나는 고민들
-> 좀 자세히 보면, 성취된 내용이 언제 무너지지 않을까.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 성취로 인해 나타날 다른 문제들



● 원래 희망은 희망대로 비록 지금 성취가 되지 않아도 좋은 기능을 하는 내용이다.
또 그 가운데 희망이 일부 성취된 현실도 그런대로 좋은 기능을 한다.

그런데 고민되는 상태에서는 이 모두가 다 나쁜 방향으로 기능을 한다.



파란 에디터가 말을 잘 안들어서 이만 줄이기로 하는데,,,

커서가 잘 안 움직이는 병이 생겼네요,,


여하튼, 안 좋은 기능을 없애고 각 부분에서 좋은 기능만
현실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일단 기본적인 목표이고,
두번째는 막연한 희망, 성취의 내용에 구체적인 현실을 넣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정말 오늘 하루 무엇이 성취되어 있어야 하고
또 무엇을 희망으로 가져야 하는가...

성취와 희망을 갖는 양 상태에서
성취된 현실은 현실대로
희망은 희망대로 모두 문제를 갖는다면,
그 병부터 우선고치기로 하고,,

우선 이 파란에디터가 말을 안들으니,,이정도 두서없이 끝내기로,,


/

● {최초 주제도입으로 의문제기- 논의할 주제를 처음 제시 하는 부분}

○ {간단한 결론제시-함축적 결론,격언적 제시, 부분}

▼ {독자나 상대방 입장에서 주제가 도출되는 내용}

▽ {독자나 상대방 입장에서 주제가 도출되는 자세한 과정 내용}

▲ {주제 결론의 객관적인 장단점}

△ {사례나 비유 이야기 형식의 글}

■ {주제에 대한 부가적 설명 도입}

□ {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의 실질적 내용}

★ {논증 또는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

☆ {실질적 논증 부분}

∴ {최종 결론}

[자세한설명] {백과사전이나 일반 논문 내용} [설명끝]

[주석] {인용한 책 참고 논문 등} [주석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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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octr gong

◑[작성일]◐ 2011-09-월-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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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통달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병이 있다.

세속의 어려움과 번잡함을 떠나서, 달관한 상태로,

~ 하면 무엇하나의 병에 걸리기 쉽다.


그런데 그런 경우 삶의 의욕마저 잃고 정말 하는 것을 살펴보면

별 의미있는 일이 아니라, 쉽고 생리적인 일들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면 무엇하나 하고 회피하는 이유는

그것이 의미없어서라기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병에 대해

퇴치하는 주문이 있으니 문구를 바꿔 보는 것이다.

~ 안 하면 무엇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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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단>의 방안 : 참고 <단>이란 악한 뜻에 대해 그 단점을 보고 끊는 것을 말함




- 자연적인 금지 배제의 획득

사람들은 술 담배 등 개인적인 위해가 곧 따라오는 것에도 이끌린 다음에는 벗어나기 힘들어 한다. 그 폐해가 자신의 삶에 닥쳐 오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위해가 큰 악의 경우에는 또 사정이 다르다. 자신의 당장의 일생에서는 그 폐해가 자신에게 직접 닥쳐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경우 그 당장의 순간에 마치 오물이나 살을 칼로 베는 순간의 고통처럼 곧바로 그 폐해를 느낀다면,

악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술 담배 등을 자연적으로 싫어하고 가까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따라 체질이 맞지 않다거나, 여러 이유로 그리 이끌리지 않아서 멀리하는 경우다.

<단>의 필요성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생리적으로 본능적으로 이렇게 악으로부터 <단>의 상태를 이루었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악한 뜻에 대해 그렇게 자연적으로 그 단점을 보고 끊어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또 한편 본능적으로 지금도 나쁘게 여기고 나중에도 나쁨을 가져다 주는 어떤 행위( 예를 들어 냄새나는 오물을 먹는 것 )처럼 새삼스럽게 <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훈련해야 되는 것이 아닌 상태가 사실은 가장 바람직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나,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악에 대해서는 자기 최면을 걸어서라도 그런 오물처럼 늘 인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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