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체적인 실현과정

●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든 선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데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적용해 볼 수 있다.

1 먼저 숨을 세거나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현실에 집중 전념한다.

2 현실의 상태가 갖는 선, 악, 행복, 불행의 요소를 검토 반성한다.

3 그리고 이를 기초로 자신이 추구할 미래의 선하고 행복한 구체적인 상태를 결정한다.

4 실현시켜야 마땅한 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간다.

5 그 실현시켜야 마땅한 희망을 실현시켜 나간다.

6 선한 상태나 희망에 대해마땅히장점을 찾아 만족을 얻는다.

7 악한 상태나 희망에 대해그 단점들을 보고 없앤다.

8무시해야 마땅한 일들에 대해 무시함으로써 현실에서 불만 두려움 등을 제거한다.

선한 행복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을 위와 같이 제시해보았다.

다만 위 내용을 무조건 아무 대상에나 순서대로 적용해가는 것은 아니다. 즉, 희망을 실현시켜가거나, 불만을 없애거나, 희망을 포기하거나, 만족을 찾아 나갈 때 현실의 모든 사항에 대해 어떤 구별 없이 무조건 이 원칙을 적용해 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행복을 위해서 어떤 희망이 마음에 나타나면 무조건 그것을 실현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상황에 대해서든 만족을 얻으려 노력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또는 어떤 희망이든지 그것을 포기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면,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중요시할 것은 중요시해야 한다. 따라서 추구해야 마땅한 희망은 중요시 여기고 이를 반드시 실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마땅히 무시해야 할 것은 무시해야 한다. 또 버려야 마땅한 희망은 포기해야 한다. 장점을 발견해 만족해 머물려야 하는 상태에 대해서는 만족해야 한다. 따라서 위의 방침대로 실천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것이 그런 사항에 해당하고 어떤 것이 그에 해당하지 않는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물론 어떤 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각 사람마다 또 각 구체적인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갑(甲)에게는 실현시켜야 할 희망이지만 을(乙)에게는 그것이 포기해야 할 희망인 경우도 있다. 또 지금은 포기해야 할 희망이지만 또 어떤 순간에서는 그것이 실현시켜야 할 희망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의사가 되어 병든 이를 고쳐주고자 하는 희망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에 관련된 희망은 실현시켜야 할 중요한 희망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와 관계가 먼 것들은 무시하고 포기해야 할 대상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주로 현실의 선악 행복 불행 등의 반성단계에서 올바른 가치 평가에 의해 그 기준이 결정되어진다. 그리고 자신이 실현시키기로 결정한 선한 행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또한 이런 판단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사실상 어떤 것을 각기 선택, 실현, 무시, 포기, 만족할 것인가를 판단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모습이 달라진다. 또 실제 현실에서 행복하고 선한 상태를 실현시킬 수 있는 데에는 이런 기초적인 판단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실현시켜서는 안 되는 악한 희망, 또는 실현 불가능한 희망을 추구하기로 결심한다면, 그를 악하고 불행한 사태로 끌고 가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어떤 귀중한 보석을 훔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는 도둑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능력을 다른 생명을 돕는데 헌신하여 쓰기로 마음먹는다면 그것이 그를 선하고 행복한 상태로 이끌어가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런 판단과 결정을 하는 단계가 삶의 방향을 달리 만드는 가장 기초적으로 중요한 단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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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

1) 선한 행복의 구체적인 실천과정

● 여기서는 앞에서 간단히 제시한 방안들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을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어느 한 가난한 거지의 경우를 놓고 선한 행복의 실천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제 이 글을 읽는 이는 자기 자신이 바로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 몰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선한 행복의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만일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선한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이보다 나은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좀 더 쉽게 선한 행복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현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대하게 되는 문제점은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현실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건강, 시간, 즐거움, 지혜, 지식, 미, 인격, 직업, 물질적 부, 인간관계, 사랑, 결혼, 가정생활, 권력, 자유, 타인 타 생명에 대한 희망, 사회에 대한 희망, 일반 자연현상에 대한 희망...등등이 그것이다. 또 이들에 대한 평가도 추상적인 기준을 세워 하는 경우와, 어떤 특정한 다른 이와 비교하여 하는 경우가 있다. 타인과 비교할 때는 그 타인을 구체적으로 누구로 정하는가에 따라 매우 큰 변화가 있게 된다. 그리고 이들 각 경우마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문제들은 각기 개별적인 내용으로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앞과 같이 하나의 예만을 기초로 살피기로 한다.

따라서 이 글을 대하는 이가 다른 문제에 부딪혀 있는 경우에는 다음의 내용들을 개개의 특수상황에 맞게 바꿔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많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 경우는 행복론 각론에서 해당항목을 별도로 참조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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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다음의 전체적인 글의 일부입니다.
無名 著, <가칭><<최상의 행복 총론>>, 목차

이 글들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완전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교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종 완성되기 전에 미리 여러분의 거리낌 없는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본 책은 각 부분이 교정되는 대로 그 각 부분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책 전체분량의 최종 완성 이후전 내용을 계속 인터넷상에서 무료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공개된 내용은 자유롭게 이용하시되,

다만 어느 경우에나 저작자의 허락없이 내용을 임의로 변경하여 이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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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 Gong 1995/01/17-수정 2013/06/12/수/10:36
$
출발현실에서 불만을 없애는 방안들

○ 행복을 얻고자 할 때 처음 생각할 수 있는 방안

우리는 행복을 원한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을 구하는 상황은 여러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당면한 현실이 지극히 불행스런 사고를 당하여 슬픈 경우도 있다.
또는 현재 처한 어떤 상황이 지극히 나빠 고통스런 경우도 있다.
또는 날씨가 너무 무덥고 습기가 차 눅눅하여 불쾌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병이 걸려 고통스런 경우도 있다.
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머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도 있다.
또는 모든 것이 뜻과 같아서 기분이 상쾌한 경우도 있다.

처음 행복을 얻어내고자 할 때 이처럼 한 사람이 놓인 상황은 다양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비교적 상황이 좋지 않고 복잡하여 곧바로 행복을 얻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을 예상하여 행복을 얻는 방안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런 상태에서 곧바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원래 올바르고 바람직한 그리고 아름다운 어떤 행복한 상태를
실현하려면 그 전에 조용하고 깊게 생각을 해보아야 할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무엇이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르고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상태인가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고
또 이에 관련하여 알아야할 세상의 참된 진리나 가치의 내용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오래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앞과 같이 당장 고통을 느끼거나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머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에는
시간을 들여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가기가 쉽지 않다.

또한 그런 상태에서 원하는 상태가 곧바로 성취되지 않는 한
곧바로 그렇게 행복한 상태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불행하지는 않는 중간의 상태를
먼저 실현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중간의 상태란
어떤 상황이 만족을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도 주지 않는 중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좋다고 보는 상태가 실현되지 않음으로 인해 불만과 불쾌가 생긴다.
그리고 실현 가능하고 실현시킬 가치가 있는 좋은 상태는 마땅히 실현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일단 주어진 상태에서
좋고 나쁘다는 가치 판단을 없애서 불만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의미한다.

비록 행복이나 만족을 곧바로 얻지는 않더라도
당장, 불만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그리고 장차 행복한 상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 전념 집중

정신이 어떤 한 곳에 집중하면, 그 집중한 내용 이외에 다른 것은 잊혀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떠올려 이에 집중하면
이를 통하여 어떤 상황이 자연적으로 주는 불만과 고통 불쾌...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원래 불만은 어떤 현실을 대하고 이것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의식하는 경우에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불만을 없앤다는 것은
비록 불만을 주는 현실 상황에 놓여 있지만,
의식의 상태를 의식적으로 바꾸어,
그 현실로부터 나쁨을 의식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들어가지 않는 방안을 말한다.

그리고 전념 집중이란, 의식을 어떤 한 대상에 집중시키고,
동시에 그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중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현실상황으로부터 나쁨을 얻어갖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식에서 나쁨을 의식해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안들로
다음과 같은 유형을 생각할 수 있다.

○ 좋고 나쁨을 생각하지 않고 현실만 집중해 인식하는 방안

앞의 전념 집중의 방안을 응용하여, 전념의 대상을 현실내용으로 정해 집중하는 경우이다.
원래 전념 집중은 반드시 현실 내용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관념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비록 불만을 주는 현실을 대해서도 그 현실 내용에만 집중하고
그것의 좋고 나쁨을 의식함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불만의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보통 나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현실을 대하는 순간
곧바로 나쁜 기쁨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오물이 튀겨서 옷에 묻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런 경우 그 오물을 의식하는 순간 곧바로 나쁜 느낌을 불러 갖게 된다.

그런데 이는 이런 경우 오물이 튀었다는 것만을 의식하고
그 의식에만 머무르고 더 이상의 생각은 중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오물이 튀었음을 의식하는 순간 곧바로 불쾌함을 받게끔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전념 집중은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단지 그 현상이 무엇이다라는 생각만 할 뿐,
그래서 좋다라거나 나쁘다는 등의 생각으로 나아가지 않고 중지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 단순한 관념이나 판단의 내용에 집중하는 방안

현실상황에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이나 판단을 떠올려
여기에 의식을 집중할 때에도 의식은 나쁨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희망이나 좋음의 기준에 일치하는 현실만 그리는 방안
- 이 경우도 전념의 방안을 응용한 것이다.
이는 단지 집중할 내용으로 이미 좋은 현실상태를 선택하는 것만 다르다.

이런 경우는 단순히 집중하여 평정한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좋은 대상에 집중함을 통해 좋은 느낌을 얻는데에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선 이렇게 무언가에 집중하면, 그것만으로도
나쁨에서 벗어나 머무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 희망이나 좋음의 기준만 단순히 그리는 방안
- 이 경우도 전념의 방안을 응용한 것이다.
비록 현실 상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을 떠올려 이 내용에 전념 집중하는 경우다.
이 경우도 역시 단순히 그 내용에 단순히 집중하여 평정한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집중하는 내용이 희망하는 좋은 내용이므로
좋은 느낌을 얻는데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


○ 희망이나 희망의 근거가 되는 가치판단 자체를 없앰-

이 경우는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을 없애는 경우다.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다고 생각하므로,
좋은 사실에 대해서는 이것이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 생긴다.
나쁜 사실에 대해서는 이것이 없어지길 바라는 희망도 생긴다.

동시에 나쁜 사실에 대해서는
그런데 이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희망도 없어지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문제되는 하나의 상태에 관해서만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상태와 일체의 가치 판단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모든 상태로 확대하면 일체(一切)의 좋고 나쁜 구별기준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된다.
이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가치평가 하는 자세를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얻는 경우에 해당한다.
즉, 좋고 나쁜 차별적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사색을 필요로 한다고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영원불변한 실체는 없음을 생각한다던지,
모든 것의 근본 실재는 평등하게 그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생각한다던지,
모든 것이 다 함께 언젠가는 변하고 사라지는 것임을 생각한다던지,
이것이 무엇이고 저것이 무엇이다라는 관념은 본래 대상에는 없음을 생각한다던지,
또는 좋고 나쁨은 본래 그 대상에는 없고 마음 안에서만 구별해 내는 내용일 뿐임을 생각하는 등으로,
좋고 나쁨의 분별을 벗어나는 방안을 의미한다.

한편 좋고 나쁨의 인식을 없애기 위하여,
본래 좋고 나쁨의 구별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모두가 평등하게 좋다라고 생각해도
무엇이 나쁘다는 불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좋고 나쁨의 구별이 없다는 것과
모든 것을 다 좋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
또 이는 모든 것을 다 나쁘다고 판단하는 경우와도 다르다.

모든 것을 다 좋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모든 경우에 좋음을 얻고 만족한다는 것이 된다.
또 모든 것을 다 나쁘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모든 것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와 같다.

이들은 어느 경우에나 좋다 나쁘다의 차별을 계속 전제로 한다면,
좋고 나쁜 차별적 판단을 하지 않는 상태와 같게는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자세가 극단의 상태에 이르면 결국 기준자체가 사라진 상태와 동일한 상태에 이를 것이다.

모든 가치 판단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좋음도 나쁨도 없고
따라서 불만도 없고 만족도 없는 상태가 된다 하겠다.

이의 방식을 만족스럽지 못한 거지의 예를 가지고 본다면
해결되지 않는 부와 가난의 문제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식이다.

부와 가난의 상태에 대해서 좋고 나쁜 차이는 없다.
부자는 부자대로 좋은 점이 있을 것이고 가난함은 가난한 대로 좋은 면이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난함과 부라는 것은 물질의 소유 지배라는 면에 대해 보는 것인바
더 많은 물질을 자신의 지배에 넣었다는 것이 보다 적게 넣었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낫다고 할 수 없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분별 차별할 필요나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굳이 부자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버린다는 식이다.


출발현실에서 불만을 없애는 방안들-전념

Ω♠문서정보♠Ω
™[작성자]™ Doctr Gong
◑[작성일]◐ 1995/01/17-수정 2013/06/12/수/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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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 Gong 1995/01/17-수정 2013/06/12/수/18:12
$인식을 현실에 투영하지 않음으로서 불만 상태를 벗어남

당면한 불만 상태를 벗어나는 것를 목적으로 할 때는
다음 방안들도 생각할 수 있다.

● 현실인식 제거
이는 현상에 대한 인식을 없앰으로써 나쁨을 인식하지 않는 방안이다.

○ 현실에 관념적 분별을 투영하지 않음

● 이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감각한 내용에 대해 관념 판단 자체를 없애는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실에 대해 만들어 가진 관념이
감각된 현실에도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즉, 감각도 하고 관념 판단도 행하지만,
이런 감각과 관념을 일으키는 실재의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인식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또한 관념은 감각한 내용에는 그와 같은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음을 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래서 현실의 현상을 일으키는 실재는 그런 관념과 같은 차별적 내용을 세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관념적인 판단에 관념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는 철학적 내지 종교적인 사고로 현상적으로 얻는 감각 및 관념에 의미를 두지 않는 자세다.

이로 인하여 현실의 차별적인 모습에 대해 문제삼지 않고 더 나아가 나쁨도 얻어갖지 않게 된다.

이는 꿈과 현실의 관계에서 꿈에 의미를 두지 않는 자세와 같다.
비록 꿈을 꿀 때는 꿈에서 좋고 나쁨을 얻지만,
그러나 꿈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그것은 꿈이 현실에 비해 일시적이고 변화하는 내용이어서,
신뢰하고 집착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얻는 감각내용이나 관념도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내용은 감각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바위다 꽃이다는 등으로 관념적인 판단을 행한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며 생각을 일으키고 닫음에 따라
만들어 갖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일시적이고 변화하는 것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현상적으로 이런 내용을 얻어 갖게 하는 참된 실재는 무엇인가에 대해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의 그 모든 차별적인 모습은 그 본질은 어떠한 모습일 것인가?
우리가 이에 대해 깊이 사색을 하면 할수록 이는 그 답을 간단히 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현상을 일으키는 실재 내용은
그 내용을 얻을 수 없고, ‘분별을 행할 수 없는 상태’
따라서 ‘어떠한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로서의 그 무엇’이라고 본다.
공(空)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실재 상태로서의 그 무엇에 대해 이름 붙인 것이다.

그리고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진짜 실체'는 앞에서 말한 내용 공한 '실재'와, 현상내에서 얻는
감각과 관념에 걸쳐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판단을 받아들이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맺히는 모습이 사라진다거나 달리 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러한 판단을 한다고 하여 어떤 관념 작용을 중지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감각하고 판단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 실재는 얻을 수 없고 또한 판단 분별할 수 없고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그래서 공이라는 말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며 해
이 모두에는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실체란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이런 입장에서 감각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현상의 본질이 공하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되면
자신의 분별과 희망 그 모든 것이 결국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나타나고 변화하고 사라져 가는 일시적인 모습들이라 보게 된다.
따라서 비록 현실은 이에 집착하면 고통과 즐거움 또는 이 둘 다 아닌 상태를 주지만,
그것은 마치 꿈 속에서 꿈 내용이 그런 것처럼
이런 내용역시 그런 것으로서 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거지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거지가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인식하는 현상은 원래 서로 분별하여 차별을 지을 수 없는 실재를 바탕으로 나타난 단지 꿈과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누구는 부자다 누구는 가난하다는 식의 분별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것은 꿈 속의 내용처럼 크게 집착하거나 문제삼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여
불만의 상태를 벗어나는 식이다.


[ 참고 : 수행을 하면 초월적인 감각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상태도 또 다른 하나의 현상적인 모습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 불만을 벗어나는 방안-관념분별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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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octr Gong
◑[작성일]◐ 1995/01/17-수정 2013/06/12/수/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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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 Gong 1995/01/17-수정 2013/06/12/수/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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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수[면]

당면한 불만 상태를 벗어나는 것를 목적으로 할 때는
또 다음 방안들도 생각할 수 있다.

● 잠을 자거나 잊어버린다. [망각 수면]

이는 현실의 인식상으로도 현상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잠이 깊이 들면, 현실 인식이 없어진다.
이처럼 불만을 가질 현실 인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결과 불만이나 나쁜 상태에 대한 인식도 함께 있을 수 없게 된다.

현실적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로서 들 수 있는 것은 깊은 수면의 상태이다.
물론 병적인 의식상실 및 정신능력상실 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행복추구방안으로 들만한 것은 아니다.
그 다음 비록 자고 있는 상태는 아니나
일상에서 가끔 멍하게 있게 되는 경우와 같이
의식이 없는 상태와 유사한 상태도 있다.

또한 의식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도 있을 수 있다.

종교적으로 불교의 한 수행방법상 선정(禪定}과 삼매라는 것은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함으로서
다른 잡념을 버리고 대신 집중한 것에 세밀한 분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에서 하나의 현실이나 희망에 집중하여 다른 불만들을 잊는 방법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들은 현실 인식 자체가 행하여지지 않는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이 선정의 마지막 단계로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 생각함도 생각아니함도 아닌 경지의 선정)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태는 현실적으로 현상에 대한 인식 및 분별이 없는 선정의 상태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의식적으로 현상에 대한 인식을 버리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선정과 삼매에 대한 차이 및 상세한 설명에 대하여는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소를 참조할 것 ]

여하튼, 이런 방안들로 현실을 인식하지 않는 것은 일시적인 방책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위와 같은 방안을 통해 현실인식을 잠시 떠나더라도
다시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는 상태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사람의 고민과 번뇌를 상당히 완화시켜 주는 작용도 갖는다고 본다.
물론 그런 상태가 사라지고 다시 현실을 대하면 여전히 동일한 번뇌를 계속해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자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상황이 바뀌어져서, 새로운 인식도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물론 선정의 극한 세계에 머물러서 얻는 그 무엇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는
초월적인 경험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그리고 이는 직접 경험을 통해서 파악할 내용이며, 여기서 더 세세한 논의는 피하기로 한다.

이상의 방법을 거지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현재 자신이 인식하는 현상이 너무 고달프고 괴로우므로 그냥 잠을 푹 자고
그 후 일어나서는 그 문제를 잊어버렸다는 식이다.

● 불만을 벗어나는 방안-망각,수면

Ω♠문서정보♠Ω
™[작성자]™ Doctr Gong
◑[작성일]◐ 1995/01/17-수정 2013/06/12/수/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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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 Gong 1995/01/17-수정 2013/06/12/수/18:12
$일체의 감수와 분별을 떠남

불만 상태를 벗어나는 것를 목적으로 할 때는
또 다음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 일체의 감수작용과 분별을 떠남으로서 불만 상태를 벗어남

일체의 감수작용과 분별 작용을 떠나는 경우 불만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불만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대부분의 분별 기능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의 대표적인 상태로 의식 상실이나 의식 불명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식물인간의 상태로 장시간 단지 생명만 이어오다 한참이 지난 후 의식을 되찾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의식 불명상태에 있었던 기간을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식물인간이 되는 상태를 행복론에서 행복을 얻는 방안으로 제시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일체의 분별을 떠나려는 노력도 생각할 수 있다.

관념을 갖지만, 그 관념을 현실에 투영해 적용하지 않는 자세와 이는 다르다.
선정의 단계로 비상비비상처정보다 조금 더 깊은 단계의 선정 수행으로
멸수상정을 든다.

이런 상태는 감수작용과 분별작용이 함께 떠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들은 모두 일상적인 경험을 초월한 내용이어서 서술하기 곤란하다고 본다.


● 죽음, 의식 상실

그 외, 죽음의 상태를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삶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행복의 현실적 실현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넣기 곤란하다.



● 해[탈]

해탈이란,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상태로서 제시되어진다.
이 상태는 깨달음을 얻어 일체의 차별적 분별을 떠나고 절대 평등의 상태에 들어서서
번뇌를 영원히 떠나고 그리고 다시는 윤회의 고통을 받지 않는 상태라고 제시되고 있다.
다만,
이는 종교적으로 오랜 수행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된다고 제시되는 목적 상태이기에
일상적인 경험 영역에서 서술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여하튼 이러한 해탈의 상태도 고통과 불만 상태를 벗어나는 하나의 길로 제시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불만을 벗어나는 방안-감수와 분별을 떠남-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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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실현 과정과 행복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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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

○ 행복의 발생구조

수정작업글








현재파일 D:/G_01hwp/G/2g/ht550.hwp 제목: 


● 행복의 발생 구조


● 만족의 구조

만족의 양 질 시간적 평가 - 즐거움, 기쁨 보람 가치 평온 안정



● 희망의 구조

○ 구판 fr /270 /280 /290 /300

만족..등의 구조

---ht370의 내용과 체계 순서 조정필요성 ---

] ⃝> /270







]] ●> 만족, 불만, 희망, 두려움의 구조




행복의 기본요소의 구조

행복의 기본 요소는 만족과 희망을 그림에 있다.

그리고 기쁨, 즐거움, 보람, 가치감, 평온, 안정 등은
만족의 양적 질적 시간적 차원의 문제이다.

이들은 앞에서 함께 보았다.



여기서는 만족과 희망을
그에 반대되는 불만 두려움과 함께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논의이유



만족, 희망, 불만, 두려움 등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가를 살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는 1차적으로 심리과정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뿐만 아니라
이런 지식을 기초로
행복을 얻는 방법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는 이런 목적을 위해서
행복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만족 희망, 불만, 두려움 등에 대해
그 발생 원리와 구조를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좋음의 느낌을 얻는 과정


만족 불만 희망 두려움은
각기 좋음과 나쁨을 느끼는 정신과정과 관련된다.


여기서 대표적으로 좋음이란 느낌이
어떤 정신과정을 거쳐서 얻어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좋음을 얻는 정신과정은 다양한 정신 과정을 거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정신과정을 대강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어떤 정신내용을 얻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를 생각하면 다음이다.

그것은 외부대상과
주체의 감각기관[눈,귀,코,혀,몸]과 인식기관[뇌]이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주체의 정신 내부에서 많은 내용물[감각내용, 감정, 개념내용, 판단, 의지, 희망...]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요소를 기초로 좋음의 느낌을 얻게 된다.














정신작용의 기초, 실재내용[#]과 감각내용[!]

정신작용의 설명의 어려움 


      TO o:/G/G/03/ghpt/r1030.htm  
참조 - 정신의 위치에 관한 논의 
http://essay007.tistory.com/883
///


댓글 테이블 





◈Doctr Gong 2014/01/22/수/19:45


● 좋음의 발생 과정에 대한 논의의 시작,  

아이가 그림책을 대하거나, 장난감, 게임기, 과자를 대하면 좋음을 느낀다.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면 좋음을 느낀다. 
병이 걸린 이가 자신의 병을 잘 고쳐줄 의사를 만나 병을 낫게 되면, 좋아한다. 
배 고픈 이가 음식을 만나게 되면, 좋아한다. 

이처럼 각 경우마다 좋음의 느낌이 나타난다. 

우리가 무언가를 찾을 때는 
1차적으로는 이런 좋음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과 선도 마찬가지다. 

물론 행복은 단순한 좋음이 아니고 조금은 복잡한 좋음이다. 
즉 좋음을 그 양이나 질, 기간, 주체, 상황 등과 고려하여 
복합적으로 평가하여 좋고 좋음을 평가하여 
그것을 행복이라고 이름붙이게 된다. 

또 선악의 문제는 이 좋음과  관련된다. 
선 또한 단순한 좋음이 아니고  
행복보다도 좀 더 복잡한 좋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좋고 
지금 좋고 나중 좋고 오래오래 좋고 
이리 보아 좋고 저리 보아 좋고 두루두루 좋음을 
가져다 주는 내용을 
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좋음은
복합적인 좋음으로서 
행복과 선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삶의 문제는 
가장 좋고 좋고 좋은 상태를
어떻게 얻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선한 뜻의 실현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해나가는 것을 바람직한 좋음의 추구과정으로
보게 된다. 

그것은 곧 선과 행복을 결합한 상태를 뜻한다. 

문제는 이러한 선과 행복의 기본 요소에 
좋음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위 예에서 
아이가 그림책을 대하거나, 장난감, 게임기, 과자를 대하면 좋음을 느낀다고
말했는데, 
그 상황에서 다른 것은 좋음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좋음을 주는 내용이 달라짐을 볼 수 있다. 

아이에게 좋음을 주는 장난감이 
사랑에 빠진 청년에게 그다지 좋음을 주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또 반대로 사랑에 빠진 청년에게 좋음을 주는 
아름다운 여인이 
배 고파 음식을 찾는
다른 이에게는 별로 좋음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좋음의 대상과 좋음의 발생과정



그래서 이 각 경우마다 
무엇이 좋음을 주게 되는가를 
1차적으로 찾아 보아야 한다. 

원래 이 문제는 
왼 손바닥과 오른 손바닥을 부딪혀 소리가 날 때 
그 소리가 어느 손바닥에 들어 있었는가를 
알아내는 것과 유사한 문제다. 

우리가 무엇을 대하여 좋음을 느낄 때 
분명 자신의 마음 안에서 좋음의 느낌을 확인하고
그 좋음의 느낌이 있음을 알지만,

그 좋음을 얻게 된 상황에 존재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어느 것에 
그 좋음이 과연 들어 있었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위 문제와 비슷한 것이다.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여 물이 된다고 할 때 
물은 산소에 있었는가 수소에 있었는가. 
이런 화학 문제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는 각 경우에 
그러그러한 요소가 자신에게 주어지면 
자신이 좋음을 얻게 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선과 행복의 기초요소가 되는 
좋음도 이와 같은 것들에서, 
그러한 과정으로 좋음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좋음은 각기 이러한 내용을 
이러한 주체가 대할 때 
이들이 화합하여 
그 주체의 마음 안에 얻어지는 내용이라고 
설명할 수 밖엔 없다. 

그 이상의 
보다 자세한 논의은 현상의 진리론의 
인과 발생과정에 대한 논의로 넘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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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느낌의 발생과정

앞에서 본 것처럼 일정한 정신내용이 기초가 되어
좋거나 싫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좋은 느낌은 이 과정에서
어떤 요소를 기초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얻게 되는가가 문제된다. 


참고로 여기서는 좋은 느낌만을 대표로 살핀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느낌 등 다른 느낌에도 공통된 내용이다.

앞에서는 다음의 관계를 제시하였다.
즉 외부 대상[#] + (매개체,빛,파장..)[#] + 자신의 감관[#] +자신의 인식기관[#]

-> 감각내용[!] -> 관념내용[@] -> 언어내용% [@->@->#->!
->@->@]->  행위[@->#->!->@] -> 분별판단내용@의 연쇄과정이다.

그런데 위 과정에 먼저 좋거나 싫은 느낌의 발생과정을 집어 넣지 않았다.

그것은 좋은 느낌의 경우 아래에서 살피려 하기 때문이다.



느낌을 얻는 기초요소


우선 좋음의 느낌을 얻는 기초요소가 문제된다.

정신과정에서 좋은 느낌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여러 내용을 생각할 수 있다.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부터 나열해보기로 하자.


관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는 경우,
그 관념을 떠올린다면 좋음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과를 현재 감각하지 않고 있어도
사과@라는 관념을 기억에서 떠올리면
좋음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우선 관념@이 좋음을 일으킬 수 있는 기초요소임을 인정할 수 있다.



판단[@+@]

앞에서 관념이 좋은 느낌의 기초요소가 됨을 보았다.
그런데 이런 관념이 결합된 판단도 좋음을 일으킬 기초요소가 된다.

그것이 사실에 관한 판단이든 가치에 관한 판단이든 같다.

실례로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방안에 있는 사과는 100개다’[사실판단]
‘사과는 아름답다’[가치판단] 는 등의 판단을 할 때에도 역시 좋음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 때 판단을 구성한 개별 관념이
좋은 느낌을 불러온 것인가
아니면 전체적인 판단이 불러오는가도 문제될 수 있다.

이는 판단이 좋은 느낌을 얻게 하는 한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굳이 문제된다면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각 관념들은 좋음을 얻지 못하지만 전체판단은 좋음을 얻는 경우가 있다.
[얄미운 사람이 맞는다]

또는 반대로 각 관념을 좋음을 얻지만
전체판단은 좋음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쁜 나비가 포도잼 속에 빠져 있다.]

이런 예에서 판단은 단순한 관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좋은 느낌을 일으키는 독립적인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다.



감각내용[!]
앞에서 관념, 판단 등은
그것이 감각내용을 전제로 하지 않고도
좋음을 얻는 경우를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념, 판단은
감각내용이 함께 병행할 때에도 역시 좋음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과를 눈앞에서 보고 만지고 맛보면서
사과라는 관념을 갖는 경우에도 좋음을 얻을 수 있다.

감각내용은 많은 관념의 출발 기초가 된다.
또 감각내용이 관념과 병행할 때는
좋음의 느낌을 보다 강하게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관념만 있을 때 보다는 직접 사과를 보고 만지고 맛보면서 사과를 생각할 때 좋은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감각내용의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정신과정 중에서 약간 논의가 필요한 것은 다음이다. 즉, 관념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감각내용만을 기초로 곧 좋음의 느낌을 얻을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이는 다음 문제와 관련된다. 감각내용은 이를 기초로 곧바로 관념을 일으키곤 한다. 이처럼 감각내용은 이를 기초로 곧바로 좋은 느낌도 곧바로 일으키는 것인가? 아니면 감각내용은 그를 기초로 관념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이 관념이 기초가 되어서만 좋은 느낌을 일으키는가? 아니면 다시 관념을 일으키고 이와 비교할 어떤 다른 관념이 병행 비교되어야만 좋은 느낌이 얻어지는가? 즉, 좋은 느낌을 얻으려면 자극-반응의 체계로도 충분한가 아니면 비교과정이 반드시 필요한가가 문제된다. 이와 관련하여 좋음의 느낌은 감각내용만을 기초로 얻을 수 있는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의 실험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감각내용만을 얻고 관념이나 판단을 행하지 않는 정신상황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의 일반 상황에서는 감각내용을 얻으면 이에 상응한 관념을 바로 얻게 된다. 따라서 감각내용만을 얻고 관념을 얻지 않는 상태를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경우는 깊은 수면이나 식물인간이 된 상태 등에서 가능할지 모른다. 또는 불교의 선정(禪靜)수행을 통해 관념작용 이상의 정신작용을 정지시키고 감각만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이르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 이런 상태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감각내용만을 얻는 상황에서 실제 이를 기초로 좋은 느낌을 얻을 수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도 어렵다. 한편 이론상,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더라도 그 경우에 좋은 느낌이 얻어지는가를 관찰하려면 다시 이 상태에서 이를 관찰할 의식을 작동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는 감각내용만을 얻는 상황의 조건에 어긋난다. 타인의 의식을 이렇게 만들고 제 3자가 객관적으로 그 과정을 관찰할 방법도 아직은 딱히 없다. 따라서 이런 상황은 만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록 이를 만들어도 좋은 느낌이 발생하는지를 관찰할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실재내용[#]
감각내용[!]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실재내용[#]만을 기초로 곧바로 좋음의 느낌을 얻을 수 있는가? 좋음의 느낌이 실재내용[#]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라는 입장에서는 이를 긍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실재대상[#]과 주체[#]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곧바로 최초로 받아들일 기관을 설정해야 한다. 그러나 반성해보면 최초로 내용을 얻는 것은 감각과정이다. 그런데 이 감각과정이 감각을 하는 순간 곧바로 좋음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입장을 취하기 쉽다. 그래도 감각내용도 전제로 하지 않고 곧바로 좋은 느낌을 얻는다는 것은 지나치다.
이 역시 엄밀히 실험하려면 감각-개념을 모두 얻지 못한 상태에서 좋음을 곧바로 얻는 경우가 있는지를 실험해야 한다. 어떤 주체가 생존하면서 감각과 개념을 얻지 못하는 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교되는 준거의 작동 가능성
앞에서 어떤 내용들이 좋음을 일으킬 기초내용인가를 대략 살폈다. 여기서 일단 조금 명료한 기초로서 관념을 들어 논의를 진행해보자. 예를 들어 잘익은 사과@라는 관념을 생각해보자.
이 사과@라는 관념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좋은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면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또 좋은 느낌을 얻는 주체에게도 그것이 항상 그렇지는 않다. 어떤 때는 나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처럼 좋음의 느낌을 얻는 과정이 일정하지 않다. 이렇게 좋은 느낌을 얻는 상황을 반성해보면, 좋은 느낌을 얻는 과정에 대해 약간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일정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일정한 내용에 대해 정신내용을 얻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유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원 대상내용과 동일성여부
먼저 ① 원 대상 내용과 동일유사한 내용을 얻는 경우와 ② 원 대상과 매우 차이나는 내용을 얻는 경우가 있다.
이는 얻게 된 내용을 대상에 있는 성질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주체가 갖는 성질로 봐야하는가를 판단하게 해준다.
어떤 거울을 놓고 생각해보자. 이 거울 앞에 어떤 사물을 놓으면 거울에는 그 사물과 비슷한 영상이 맺힌다. 이 경우 거울은 주로 외부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반면 셔터가 달린 사진기는 거울과 유사하지만, 필름에 맺히는 모습도 반드시 외부모습과 동일하지는 않다. 다만 외부모습과 상응한 또는 비례한 변화를 보인다고는 할 수 있다. 우리 정신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정신작용은 감각내용[!]에서 1차적으로 곧바로 관념@을 직접 얻는 과정을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각 관념@은 비교적 감각내용[!]에 충실하게 상응해 반응한 결과를 보인다. 즉 빨간 색[!]에 대해서는 빨간 색@, 연필[!]에 대해서는 연필@이라는 관념을 보통 얻는 것이다. 그러나 빨간 색[!]의 감각내용[!]이 개념내용[@]과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진기와 유사한 관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면 어떤 관념이 과거 기억된 관념@가운데 몇몇을 재생해내는 과정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연필@이란 관념을 얻을 때 이것이 다시 재생해내는 관념@은 이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연필@로부터 종이@나 책@을 연상해 꺼내는 경우와 같다. 이는 원래의 관념@ 예를 들어 연필@보다는 그 개별 주체의 과거 경험과 오히려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좋은 느낌을 얻는 관계도 비교적 뒤의 경우와 유사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사과@를 좋아하는 이가 사과@로부터 좋은 느낌을 가질 때 그 느낌은 사과@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으로 보기는 힘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원래 사과@에 좋은 느낌에 해당한 것이 본래 있었다고 볼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사과@에 대해 여러 주체는 늘 좋은 느낌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각 주체마다 또 시기 상황마다 어떤 느낌을 갖는가는 다르다. 따라서 좋은 느낌이란 그것을 준 대상에 있는 성질을 동일유사하게 얻어내는 것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주체별로 얻는 내용의 동일성여부
다수 주체가 모두 동일유사한 내용을 얻는 경우,
각 주체가 각기 다르게 내용을 얻는 경우,
-- 내용보다 각 주체가 갖는 특성에 더 영향받는가 여부 -- 각기 다르게 나타나게 하는 원인을 각 주체의 내부적인 특성에서 찾게된다.
대상이 있으면 늘 자동적으로 내용을 얻는 경우
대상이 있어도 내용을 얻거나 얻지 못하는 경우
-- 내용을 얻게 하는 어떤 기관의 작동여부가 어디에 있는가, 주체에게 있는가 등의 판단문제
그래서 거울은 그 사물을 놓으면 늘 그 모습을 규칙적으로 반복해 나타낸다. 또 거울은 늘 열려 있어 외부사물을 갖다 놓으면 늘 모습을 그대로 맺히게 된다.
셔터가 열릴 때만 모습을 맺힌다.
늘 동일한 내용을 얻는 과정
다수 주체에게 일정하게 작용할 때만 동일한 내용을 얻는 과정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일정하지 않다. 그것에 의해 얻어지는 관념@은
- 참고 -


우선 우리의 감각 인식기관 가운데 감각기관도 비교적 외부대상에 일정하게 반응하여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통 추리한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외부 실재대상[#]의 내용은 직접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실재대상[#]으로부터 어떤 감각내용[!]을 얻었는지를 상호 비교할 수 없다. 

그런 관계로 실재대상[#]과 얻는 감각내용[!]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추리할 근거를 얻기 힘들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사물을 반복해 관찰하면 눈은 그 사물에 일정하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물이라는 것이 바로 이미 감각내용[!]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감각내용[!]을 놓고 자신이 그 감각내용[!]을 대응시키므로 실재대상[
#]과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물론 제 3자를 관찰하고 보고를 받으면 제 3자가 우리가 보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사물을 구별해 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는 사과라고 하며 촛불은 촛불이라고 구별한다. 그래서 제 3자의 눈은 외부대상[#]에 일정하게 반응한다고 추리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제 3자나 자신이나 모두 유사한 정도로 사물을 구별하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정작 실재대상[#]에서 A[#]나 B[#]를 자신의 감각이 모두 A라고 인식하는지, 아니면 A, B, C 등으로 구별하는지를 밝혀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에서 볼 때 좋음의 느낌을 얻는 과정은 일정한 감관[#]이 외부대상[#]에 반응하는 것과 같이 이해하기 곤란하다. 오히려 일정한 관념@이 다른 관념@을 재생해내는 과정에 오히려 유사하다.
왜냐 하면 만일 사과@에 좋음의 느낌의 요소가 미리 정해져 있고 정신과정에서는 단지 이런 내용에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이 관념@은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상황에 일정하게 좋음의 느낌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관념@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을 감관이 외부대상에 반응하는 것과 같이 이해하기 힘들다.
한편 좋음의 느낌을 얻는 과정은 생각해보면 늘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뜻에 따라 행위를 한다. 그래서 움직이고 먹고 마시곤 한다. 그러나 이런 대부분의 행위를 뜻대로 하지만, 이 과정을 반성해보면 이런 과정에서 늘 좋음의 느낌을 얻는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딱히 나쁨의 느낌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음의 느낌을 얻지도 않는 것이다. 단지 주어진 상황에 몰두하며 행위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좋은 느낌을 얻게 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상황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 비로소 뜻에 맞는 행위를 할 때와 같이, 이전 상황과 현재 상황이 대비되어 좋음의 느낌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정한 감관이 그것을 열어두면 계속해 얻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감관도 열거나 닫거나를 반복할 수 있다.
... [ 조금 숙고 필요 ]
한편 좋음의 느낌은 의식적으로 좋음의 느낌을 얻으려 노력할 때만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인위적으로 좋음의 느낌을 얻으려 노력하지 않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좋음의 느낌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면들은 어떤 관념@의 재생과정과 일단 유사하다. 과거 기억이 재생되는 것도 반드시 인위적으로 노력할 때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념@의 재생과정과 다른 점은 위에 살핀 예에서 보듯 좋은 느낌은 어느 정도 기존 상황에 갖고 있던 판단이나 의식내용과 대비될 때 얻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식사는 그가 배고픈 상황에서 이를 대하면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다. 반면, 그가 배부른 상황에 있다면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차이가 좋은 느낌을 주고 안주고에 관여한다는 것을 추리할 수 있다.
는 그것에 대해 어떤 기준 상태에서 그것을 대하게 되었는가에 따라
그 A에 대해 좋음의 느낌을 얻게 되기도 하고 또는 못 얻기도 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기존 상황이 일종의 중요한 요소가 됨을 인정할 수 있다.
좋음의 발생과정
기관과 작용과정의 문제
비록 눈이나 귀처럼 우리가 외부적으로 관찰할 기관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 안에서 좋음의 느낌을 얻는 한 이런 느낌을 얻게 하는 정신영역 자체를 추리할 수는 있다.
다만 늘 작동하는 기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어떤 대상 요소에 대해 늘 규칙적인 반응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떤 고정된 형체로 대상요소에 대해 규칙적인 반응을 하며 또 이런 작동이 늘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결론만을 얻게 된다.
실험의 어려움
열어서 해부하여 자극과 반응의 내용을 관찰하기도 힘들다.
또 관찰자 자신이 스스로 이런 실험을 하여 내용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비교되는 준거의 기관성 여부
어떤 A는 그것에 대해 어떤 기준 상태에서 그것을 대하게 되었는가에 따라
그 A에 대해 좋음의 느낌을 얻게 되기도 하고 또는 못 얻기도 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기존 상황이 일종의 중요한 요소가 됨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을 어떤 내부적 정신기관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단지 기초대상과 함께 필요한 요소일 뿐 이것에 작동하는 기관이나 작용은 별개로 설정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여기서는 후자로 본다.
좋음의 요소의 변경과정
앞에서는 대략적으로 좋음이 얻어지게 되는 요소나 과정을 살펴보았다. 많은 것이 불확실한 베일에 감춰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먼저 어떤 요소들이 주체의 의지로 어떤 방식으로 변경가능한가를 검토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이를 이용해 좋음을 얻을 수 있는 기초지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단지 관찰가능한 지식일 뿐 우리가 이용가능한 지식은 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① 실재대상 - 행위를 통한 변경
② 감각내용 - 감각기관을 여닫음 [ 실재대상에 많이 지배됨]
③ 관념내용 -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가.
④ 기억 재생 - 초점, 자연발생, 의지
⑤ 판단 - 의지, ...
을 요소를 다음과 같이 구별해 볼 수 있다.
자신과 외부의 요소
어떤 주체가 놓인 현실을 자신의 요소와 외부의 요소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통상 객체, 주체, 객관, 주관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이들 용어는 철학적으로 많은 다른 설이 있어 통일적으로 의미를 정의해 사용하기가 곤란하다.
여기서는 앞에서 정의한 획득내용[*]을 기초로 자신의 요소와 외부의 요소로 구분해보기로 한다. 획득내용[*]은 앞에서 보았듯 시각을 기준으로 하면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1차적으로 변화가 파악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의 본질은 주체의 감각내용[!]에 속함을 보았다. 그리고 이 정신내용을 일으킨 실재내용[#]은 그 내용을 얻지 못함을 보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획득내용[*]은 그 모두가 자신의 정신에 들어 있는 정신내용이 된다.
이 때 비록 실재내용[#]을 얻지 못하지만, 획득내용[*]을 얻게 한 실재내용[#]을 구분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자신의 요소[#]와 외부의 요소[#]의 구별이다. 우리는 예를 들어 꽃을 만져 촉감을 얻을 때, 그것을 스스로 보게 된다. 이 때 꽃에 대한 감각내용[!]을 손의 감각내용[!]이 접촉해 촉감을 얻는다고 이해하지는 않는다. 꽃[!]을 손[!]이 만진다고 보일 때 사실은 꽃[#]이 손[#]을 접촉해 우리에게 촉감[!]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꽃[#]과 손[#]의 실재내용[#]을 직접 얻지는 못한다.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꽃[!]과 손[!]의 감각내용[!]으로서만 이해된다.
따라서 이런 관계로 결국 획득내용[*]을 자신과 외부로 분리해 그것을 곧 꽃[#]과 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논의를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감각내용[!]을 객관적 요소로 제시한다.
어떤 주체가 일정한 감각내용[!]을 얻을 때
앞의 연쇄과정에서
이들 연쇄과정에서 좋은 느낌이 어느 요소 이후에 발생하는가가 문제된다. 최소한 감각! 이후에 각 요소를 기초로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밀히 감각내용 만을 기초로 좋은 느낌을 얻는가는 확실하지 않다. 감각내용을 가질 때 그에 따른 관념을 얻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감각내용만을 갖고 관념을 갖지 않는 상황[예;식물인간,수면,최면,선정상태]를 만들어서 이런 경우에도 좋은 느낌은 얻을 수 있는가를 실험해야 한다. 또는 감각내용과 관념이 같이 얻어지고 좋은 느낌이 얻어질 때 이것이 무엇을 기초로 얻어졌는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주관적 실험이 주된 실험방안이 된다.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결론을 얻기도 힘들다. 다만, 여기서는 감각내용을 기초로 좋은 느낌을 곧바로 얻는 해석을 취하기로 한다. 예를 들어 좋은 빛깔을 감각하고 곧 좋은 느낌을 갖는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좋은 느낌은 관념이나 언어 행위 분별 등을 각기 기초로 얻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칭찬을 듣고, 즐거운 소설을 보고, 춤을 추면서, 또는 비교판단을 통해서 각기 좋은 느낌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얻는 좋은 느낌도 하나의 정신내용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감각내용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관념내용이라고 분류하기도 그렇다. 이는 별도로 감정내용이라 분류해야 할 것이다. 다만 감각과 관념의 이분법을 고집하면 이런 감정은 관념의 영역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감각내용을 기초로 얻어내는 또 다른 정신내용물이기 때문이다.
느낌에는 물론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이 있다.
이런 느낌은 이처럼 위 정신작용의 연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이 경우 외부의 요소 * 주체의 신체요소[감관]이 주된 요소가 된다고 본다.
그리고 나머지 얻어지는 정신내용은 매우 연쇄적인 결과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 단순히 감각을 하거나 개념을 갖고 이를 재생하거나 판단하는 작용들만 할 때가 있다. 이 때는 좋음과 나쁨의 느낌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떤 책상을 별 생각 없이 바라본다고 하자. 그리고 이런 감각내용을 기초로 책상이라는 관념을 갖거나, ‘그것은 책상이다’라는 식으로 판단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상태만으로는 만족 또는 불만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족, 불만 등이 있으려면 이런 감각이나 개념을 기초로 좋음이나 싫음을 느끼는 정신작용이 다시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빠뜨리기 쉬운 내용이 있다. 그것은 기존에 형성하고 있던, 기억내용, 관념 사실판단의 내용, 가치판단의 내용, 희망, 의지 등과 같은 일정한 정신적 내용물이다. 이들은 연쇄적으로 얻어지는 정신내용물과 함께 화합하여, 좋거나 나쁜 일정한 느낌을 만들어 내는데 관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을 과연 좋은 것으로 보는가에 대한 일정한 판단[ 또는 희망의 내용]이라고 본다. 이것을 좋음의 기준내용이라고 일단 부르기로 하자.
㉠ 먼저 어떤 현상을 대하여 감각하고 개념을 얻는 과정에서 좋음의 느낌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느낌] 예를 들어 어떤 책상이 정돈이 잘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거나, 책상에서 좋은 향기가 나서 기분이 좋은 경우와 같다. 이는 미리 무엇이 좋다는 가치판단이나 현상이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없었다는 점에서 다음의 ㉨과 구별된다. ㉡ 그 외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서 좋음(싫음)의 느낌을 다시 얻게되는 경우가 있다.[재생] 예를 들어 자신이 과거에 친구와 놀았던 때를 떠올리게 되어 좋은 느낌을 다시 갖거나 과거에 창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싫었던 느낌을 다시 갖는 경우들이다. ㉢ 또 이런 좋음 싫음의 느낌을 기초로 ‘좋다’ ‘나쁘다’ 등의 관념(觀念)을 형성하고 이를 기억, 재생, 표현하는 과정도 있다.[관념] 예를 들어 ‘좋다[2]’는 언어관념은 ‘좋은 느낌’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관념으로 좋은 느낌[1]을 가리키게 된다. 또 그런 관념은 재생할 수 있고 또 ‘좋다[3]’라고 소리나 글자로 표현할 수도 있다. 여기서 [1],[2],[3]은 느낌, 언어관념, 소리나 글자로서 서로가 다른 차원의 내용임을 의미한다. ㉣ 그리고 다시 이것은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아름답다, 추하다, 깨끗하다, 더럽다,...등으로 판단을 행하는 경우도 있다.[가치판단] 예를 들어 어떤 친구와 즐겁게 놀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사실을 기초로 ‘그 친구는 좋은 친구다’라고 판단하는 경우다. ㉤ 그리고 어떤 사실이 있(없)으면 좋을 텐데...라고 희망하거나, 반대로 어떤 사실이 있(없)으면 싫은데...라고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희망, 두려움] 예를 들어 자신이 돈이 많으면 좋을 텐데..., 사고를 당하면 안 되는데...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다. ㉥ 한편 좋음(싫음)을 구성하는 내용들을 떠올리거나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경우에 좋음(싫음)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희망, 두려움을 그림] 예를 들어 돈이 생기면 그것으로 살 물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좋아하는 경우다. 이는 앞의 ㉤과는 조금 다른 상태가 된다. ㉦ 또 좋음(또는 싫음)의 의미를 ‘좋음(또는 싫음)이 아님’과 대비하여 명료하게 그 의미를 구별 인식하는 정신작용도 있다.[의미분별] 예를 들어 좋음의 의미는 사실 모호하게 생각될 때가 많다. 이 때 싫음과 대비하여 이 좋음을 이해하여 그 의미를 뚜렷이 자각하는 경우가 있다. ㉧ 또 어떤 인식내용을 떠올린 뒤 이와 또 다른 인식내용을 비교하여 그것이 이보다 낫다거나 못하다고 가치판단하는 경우도 있다.[우열분별] 예를 들어 지금 방이 춥지만, 그래도 밖에서 추운 것보다는 낫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 또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 또는 희망(두려움)의 내용과 현실을 대비하여 어떤 현실이 이에 일치되었다거나 불일치되었다는 등의 비교판단도 행해진다. 방에 꽃이 있으면 좋다, 또는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꽃이 있다. 그래서 좋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다. ㉩ 그리고 어떤 좋음을 주는 것을 감각하려 하고 가까이 대하려고 하며, 이를 계속 감각할 수 있도록 자신이 지배하려고 하거나, 또는 그 대상에 좋음을 되돌려 주려고 희망하는 등의 경향을 계속 갖는 경우도 있다. 또 반대로 싫음을 주는 것에 대해 감각하지 않으려 하고 피하려하고, 그것에 가까워질까 두려워하고, 그 대상을 미워하고 싫음을 되돌려 주려고 희망하기도 한다. [기호, 심리상태] 예를 들어 철수는 장미꽃을 좋아한다라고 하는 경우다. ㉪ 또 실제로 좋은 것을 원하고 그것을 가까이 하거나 취하려는 행위를 하려 하거나 행하는 경우다. 또 반대로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고 또 그렇게 행하는 경우다. [의지, 행위] 예를 들어 철수가 애인에게 꽃을 사주려고 한다는 경우다.
그런데 좋음과 싫음의 느낌은 이런 여러 과정에서 함께 얻어질 수 있다. 따라서 좋음은 본래 어떤 과정을 기초로 얻어지는가에 오히려 혼돈을 갖게 된다. 
관찰방법의 어려움
정신과정은 그것을 행하는 주체의 외부로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제 3자가 타 생명체의 정신 과정을 직접 관찰할 도리는 없다. 결국 각자 자기 자신의 정신내용을 되새겨보고, 이를 기초로 타 생명체의 정신과정을 유추 추리하고 언어소통을 빌려 이를 확인해보게 된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에게 가장 명확한 것은 자기 정신과정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과정도 그 과정을 다시 되돌아보는 노력은 쉽지 않다. 감각이나 개념 분별 등의 정신작용을 한편으로 행하면서 또 한편으로 자기 자신이 행하는 정신과정을 스스로 되새겨 보는 노력은 쉽지 않다. 또한 좋음(나쁨)의 느낌은 일상생활에서 매우 모호한 형태가 된다. 그것은 얻더라도 형체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얻게 하는 감각내용이나 개념내용과 뚜렷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또 실제로 좋음 나쁨을 느끼지 못하고 그 중간상태에서 어떤 대상에 몰입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무엇을 좋은(나쁜) 느낌이라고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먼저 좋음(나쁨)에 대한 관념이 그에 상응하는 좋음(나쁨)의 느낌을 찾기 위해 먼저 개입하게 된다. 그 결과 이렇게 좋음(나쁨)의 관념이 먼저 선행하지 않는 일상적인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 좋음(나쁨)의 느낌이 일어나는가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
좋은 느낌의 형태
생각하건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좋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 갔는데 막상 그 곳의 경치를 대하고 좋다고 느낀다거나, 어떤 음식을 맛보게 되었는데 좋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는 경우와 같다. 이 경우 그 좋음을 느끼기 위해 어떤 나쁜 상태를 떠올려 이와 비교하고 좋은 느낌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다른 경치나 맛 등을 떠올리고 다시 이와 일일이 비교한 다음에 낫다 좋다 등의 비교판단을 행한 후 좋음의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런 여러 경우에 얻는 좋음[1]의 느낌은 ‘좋음[2]’이란 언어표현 이전에 정신 안에 있다. 또 이런 좋음의 느낌은 그 이전에 반드시 어떤 가치판단이 있은 다음에 얻는 것도 아니다. 또 그 상황에 일치하는 희망이 반드시 먼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따라서 좋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판단, 희망이 반드시 먼저 있고 다시 이와 일치여부를 일일이 판단하여 좋다라고 느끼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에 느끼는 좋음의 느낌은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어떠한 내용에서 어떤 이가 좋다 나쁘다라고 느낄 때 그것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느끼게 되는가를 명확히 밝히기는 곤란하다. 단지 분명한 것은 어떤 감각이나 개념을 기초로 좋음의 느낌이 발생한다는 사실뿐이다. 그것은 마치 감각작용이 어떤 사물을 눈으로 대하여 어떤 구체적인 감각내용을 바로 얻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좋음의 느낌은 감각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감각내용이 감각기관과 대상이 서로 관계함으로써 곧바로 발생하게 되듯, 좋음의 느낌도 정신 안에서 어떤 감각내용 또는 개념을 기초로 곧바로 발생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연히 나타나는 좋음의 느낌이 다른 좋음의 관념, 가치판단, 희망 등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본다. 즉, ‘좋음’의 관념, ‘--이 좋다’라는 가치판단, ‘--이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형식의 희망, 또 이런 가치판단 희망과 현실의 일치 불일치 판단, 어떤 나쁜 내용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좋음을 일으키는 과정, 좋음을 나쁨과 비교하여 좋음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는 과정 등은 모두 이런 좋음의 느낌을 기초로 해서 발생하게 된다고 생각된다.
최초의 좋음의 형성
우리가 좋음의 느낌을 얻기 위해서는 통상 자연적으로 어떤 경우에 좋음의 느낌이 발생하게 되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를 일률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곤란하다.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좋음을 얻게되는 내용들을 획일적으로 단순히 나열하고 이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만을 문제로 삼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좋음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는 각 주체마다, 각 시기, 상황마다 매번 다르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감각기관을 갖는 이들간에 꽃을 꽃으로 보는 것은 대부분 같다. 그러나 정작 그 꽃을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는 사람마다 시기, 상황마다 다 다른 것이다. 따라서 좋음의 느낌을 갖는 상황을 일률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곤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생명체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생존에 이익이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좋은 느낌을 얻는 반응을 하게끔 되어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만일 이렇지 못하다면, 그런 생명체는 세대를 이어서 계속하여 생존을 계속해나가기 곤란했을 것이다.
다만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 모든 것은 생존에 반드시 이로운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생존에 해로운 대상 예를 들어 마약이나 술, 죽음의 위협이 따르는 모험행위 등에서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좋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 모두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선천적으로 정해져 고정된다고는 볼 수도 없다. 예를 들면 아이가 처음에는 젖을 좋아하다가, 다른 음식에 맛을 들이면 이제 젖을 멀리하게도 된다. 따라서 그 일부는 선천적으로 결정되고 이에 다시 후천적인 경험과정 등에 영향 받아 점차 변화되어 나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경험을 반복할수록 강화되어지기도 하고 또는 반대로 수정 변경되어지기도 한다. 또 하나의 대상에 대해 계속해서 동일한 좋음이나 나쁨을 얻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싫어하던 것을 나중에는 좋아하게 된다던지, 또는 그 반대로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른이 되면 술이나 담배나 매운 맛 같은 매우 자극적인 맛에 탐닉하게도 되고 반대로 어릴 때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도 된다.
또 각 주체는 각기 좋아하는 것을 달리하여 갖는다. 따라서 이들 관계는 어디까지나 각 주체, 시기, 상황마다 변동되는 유동적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인위적인 좋음의 느낌의 형성
자연발생적으로 얻는 좋음의 느낌을 일률적으로 나열하여 고정시키는 것은 앞에서 본 것처럼 곤란하다. 따라서 이를 획일적으로 나열한 뒤 그 관계를 이용하여 좋음의 느낌을 얻으려는 시도는 곤란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시기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고 모호하기는 하지만, 한 주체가 어떤 경우에 좋음을 느끼게 되는가를 스스로 판단해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은 비록 뚜렷하지 않더라도 그 주체가 갖는 좋음의 관념, 가치판단, 희망, 비교분별의 내용 등의 기초가 되어 준다. 앞에서 보듯, 좋음을 느끼는 경우가 유동적이듯, 이런 가치판단, 희망 등의 구체적인 내용도 변화하게 된다. 또 이런 내용은 주체별로 구체적인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어느 정도 공통적인 감각기관과 정신구조를 갖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일반적으로 좋고 나쁨을 공통적으로 갖는 경우도 찾을 수 있다.
좋음을 인위적으로 찾으려 할 때는 좀더 우리에게 명확한 관념 형태로 존재하는 가치판단, 희망의 내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게 된다. 어떤 이가 어떤 내용을 좋다고 판단하거나, 희망한다는 경우, 그것은 달리 말하면 그런 내용에서 좋음의 느낌을 많이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이용하여 좋은 느낌을 얻어내려 시도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결국 현실에서 좋은 느낌을 주는 요소를 찾아내는 한편 좋음의 느낌을 주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판단이나 희망의 내용은 무엇이 좋음의 느낌을 주는 것인가를 찾아내게 하는 근거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의 이용에도 한계는 있다. 즉, 자신이 좋아하지 않던 내용을 억지로 좋다라고 가치 판단하거나 희망을 갖는다고 하여 좋음의 느낌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바퀴벌레를 싫어한다고 하자. 그런데 억지로 바퀴벌레는 좋다라고 가치판단을 내려보거나, 바퀴벌레를 손으로 만지고 싶다라고 억지로 희망을 만들어 가짐으로써 바퀴벌레가 좋은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치판단이나 희망 등이 일치되는 현실에서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이런 가치판단이나 희망들이 본래 자신에게 좋은 느낌을 주던 요소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치판단, 희망의 내용들은 억지로 좋음의 느낌을 만들어 내는 요소는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좋은 느낌을 주던 것들을 현재의 순간에 다시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다만 나쁜 느낌을 주는 것을 억지로 자꾸 좋다고 판단하거나, 희망을 억지로 자꾸 불어넣음으로써 싫음의 느낌이 줄어들고 좋음의 느낌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좋음의 느낌을 인위적으로 얻는 과정에서는 이들 가치판단이나 희망의 내용을 기초로 하게 된다. 그것은 이들의 내용이 결국 그 주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좋게 느끼는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이를 기초로 좋음의 느낌을 얻게 되는 과정을 살피기로 한다.
==================이하 내용폐기=====================
]]] ♡> 가치기준과 현실인식과의 관계
]]] ♡> 일치하는 경우
]]]]] □> 좋은 면 일치 인식-만족
]]]]] □> 좋은 면 기준 자체-
]]]]] □> 나쁜 면 일치 인식 - 불만
]]]]] □> 나쁜 면 기준 자체 -
]]]] ♥> 일치 않는 경우
]]]]] □> 좋은 면 불일치 인식 - 불만
]]]]] □> 좋은 면 기준 자체 - 희망
]]]]] □> 나쁜 면 불일치 인식 - 만족
]]]]] □> 나쁜 면 기준 자체 - 두려움, 걱정
]]] ♡> 평등성
인간이 행복과 관련하여 갖는 마음의 상태는 크게 만족, 불만, 희망과 걱정 두려움 등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상태는 본질적으로는 모두 평등하다고 볼 수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 ♥> 좋고 나쁜 기준의 불확정성
요약 - 본질적으로 차별 없는 구체적 현상에 대한 다른 판단
좋고 나쁜 기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인 이상 서로 유사한 감각기관을 갖고 따라서 좋고 나쁘다는 판단도 어느 정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구체적 형태가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예를 더 존중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결국 구체적으로 어떠한 가치기준을 갖느냐 하는 것은 개별적인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좋고 나쁜 기준의 구체적인 모습이 다 다르게 되면 구체적인 현상에 대해서 만족을 느끼느냐 불만 불쾌를 느끼느냐 하는 것도 그 주체의 개별적인 가치기준에 의하게 된다. 따라서 그 기준을 달리하면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어떠한 현상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만족을 주는가 불만과 불쾌를 주는 것인가 하는 것도 그 개별적인 기준에 의해서 차별적인 평가가 내려질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좋다 나쁘다하는 것은 모두 본질에서는 좋다 나쁘다는 차별이 있을 수 없는 평등한 상태인 것이다.
한편 그러한 기준은 각 주체별로 다를 뿐 아니라 한 주체 내부에서도 순간순간 변화하고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평등한 가운데 각 주체가 세운 기준에 따라서 차별적인 모습과 인식이 나타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 ♥> 기준에서의 좋고 나쁨의 동시존재성
우리는 좋다라는 느낌이나 만족만을 원한다. 그러나 반대의 면으로서 좋지 않은 느낌도 얻게 된다. 이런 점에서는 평등한 관계가 있다.
]]]] ♥> 좋고 나쁜 기준의 상대성
한편 좋고 나쁨의 문제는 어느 것을 좋다고 인식하면 그와 반대되는 것이나 일치하지 않는 것은 나쁘다 또는 좋지 않다라고 평가하게 되는 서로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인식된다. 예를 들면 따뜻함이 좋다면 추운 것은 싫다라던가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은 상태는 적어도 좋지는 않다라고 평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정한 현상을 좋다라고 판단했으면 그 나머지 현상과 그에 반대되는 현상을 나쁘다 또한 좋지 않다라는 영역으로 존재하게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그 양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라도 양이 많으면 그 질과 강도가 떨어져서 결국 평형을 이루게 됨으로써 상호 평등한 값을 유지하게 된다.
예를 들면 많이 있는 좋은 깨끗한 물에 대해 적게 있는 썩은 오물은 심리적으로는 동등한 값으로 매우 강한 불쾌로 평가되는 것이다.
]]]] ♥> 기준과 판단에서 쾌 불쾌의 값의 전체적 평등성
요약 - 쾌와 불쾌는 전체적으로 평등한 값을 갖게 된다.
]]] ♡> 변화성
만족 불만 희망 두려움 등은 전체적으로 쾌 불쾌의 값에서 평등한 값을 가지고 갈 뿐 아니라 한편 모든 현상과 감각 인식 판단의 경우와 같이 변화를 해 나가는 하나의 정신 현상이다.
]]]] ♥> 인식의 나타남과 사라짐 - 생주이멸(生住移滅)
만족 불만 희망 두려움의 나타남과 머무름과 변화함과 사라짐
모든 것은 변화를 계속한다. 인식자체가 변화하는 성질을 전제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쾌와 불쾌라는 현상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의 하나인 것이다.
+++ 원문끝 93.09.02 ++
+++ 원문 93.09.02 ++
+++ H25본문끝 96.01.25. ++
+++ H25본문 96.01.25. ++
++ h10 단문수정시작 99년07월10일(토)오후19-33 +
++ h10 단문수정마침 99년07월10일(토)오후20-04 +
===
만족과 희망의 구조
] ⃝> /280
]] ●> 만족과 희망
앞에서 우리는 만족 불만 희망과 두려움의 전반적인 구조를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의 요소로서 만족과 희망에 집중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 ♡> 만족과 희망의 구조
]]]] ♥> 전제
만족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선 감각과 인식이라는 정신 현상이 선행해야만 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비교 분별 종합 유추하는 정신 기능도 나타나야 한다. 여기서는 감각과 인식의 성립문제가 제기되어진다. 여기에는 외부 대상과 감각기관의 상호관계가 문제된다. 이는 철학적 심리학적으로도 깊게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편 비교기준으로서의 좋다 나쁘다의 판단과 비교대상으로서의 현실인식과는 어떠한 것이 선행해서 존재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도 부수적으로 문제 될 수 있다. 나누어서 자세히 보기로 한다.
+++ 원문끝 93.09.02 ++
+++ 원문 93.09.02 ++
+++ H11 96.02.11. ++
+++ H11 96.02.11. ++
++ h02 시작 2006년10월02일(월)16시36분 +내용9z-k510와동일하여삭제함**> /K/9Z/K510.hwp
===
희망의 구조
] ⃝> /290
]]] ♡> 희망의 구조
희망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사실은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 ♥> 욕구발생
우리가 무언가를 원한다고 할 때 그 속에는 무언가가 다른 것보다는 낫다거나 좋다는 판단이 잠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잠을 자고 싶다라고 생각하던지 먹고 싶다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 그리고 지금 발이 다쳐서 아픈데 이것을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 등등 우리가 원하는 사실은 다양하고 많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의 바탕에는 그 원하는 사실이 좋다든지 최소한 비교대상이 되는 그 어떠한 상태보다는 낫다고 하는 판단이 전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좋다 나쁘다는 판단은 어떻게 행해지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들어가면 대답을 얻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우리는 좋다라는 판단이 어떠한 경우에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의 구체적 내용이 어떻게 결정되어지는 것이냐 하는 의문은 파헤치기 힘든 문제이다. 좀 극단적인 경우들을 생각하여 보자.
예를 들어 파리는 동물의 배설물의 주변에 몰려든다. 사람은 이것을 싫어하고 피한다. 물론 파리가 배설물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정확한 내용은 파리 자신만이 알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관찰하는 바에 의하면 파리가 그런 배설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상과 같이 서로 각 주체 별로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 왜 그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한편 우리가 후천적으로 경험을 통하여 좋아하게 되는 것도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경험을 반복함으로서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처음에는 좋아했으나 계속 반복함으로서 싫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게 되는 것인지 또 그것을 왜 좋아하게 되는 것인지를 완전히 밝힌다는 것은 힘든 일이 된다.
그래서 일단 무언가가 좋다 그리고 어떤 다른 무언가를 싫어한다라는 판단이 전제가 돼 있을 때 비로소 희망의 발생이 문제된다.
그러나 단순히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희망의 상태와는 다르다.
]]]]] □> 현실인식과 기준의 불일치
]]]]] □> 과거, 현재, 미래 현실인식과의 불일치 - 욕구의 발생( - 의 제거, + 의 실현)
]]] ♡> 희망
일치하지 않는 기준내용에서 좋은 내용 (-의 제거, +의 실현된 상태)를 그리는 것
희망은, 좋은 면을 바라보는 상태이다. 좋고 나쁜 면이라는 것은 만족과 불만의 구별기준으로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좋고 나쁜 면의 양면 중 좋은 기준면 자체에 대한 응시(凝視)상태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자세히 보자면, 적극적으로는 추상적으로 좋은 상태(예를 들어 부자가되는 것)를 바라보거나 또는 구체적으로 좋은 상태(예를 들어 좋은 집)를 설정해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좋은 면이라는 것은 결국 만족,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가치감, 평온과 안정, 희망과 의욕, 희망의 성취상태를 그림, 그리고 희망의 성취자체의 상태 또는 그것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구체적 상태들을 말한다.
소극적으로는 다음에 밝힐 가지가지의 나쁜 요소가 없는 상태를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나쁜 면이라는 것은 좋은 면의 반대를 말한다. 예를 들어, 불만 가지가지의 욕구불충족 좌절 실패감 고통 억압 성남 분노 미움 질투 시기심... 불쾌 짜증 혼란 갈등 번뇌 번민 혼돈.슬픔 우울 ... 보람 및 가치감이 없음 무의미함 건조함 허무감 괴리감(乖離感) 박탈감 이질감 자책감(自責感) 후회감 양심가책 죄의식 소외 따돌림 미움 질투 시기 비난 제재 벌을 받음... 평온 안정감없음 앞에 밝힌 나쁜 상태들의 계속성과 ‘만족...희망의 성취상태를 그림’등 좋은 상태의 일시성(一時性) 초조 안달 긴장 불안 걱정 두려움... 무희망 무의욕 권태 따분함 물림 질림 침체(沈滯) 의욕상실 무력감 비관 절망 또는 희망이 있기는 있으나 위에서 밝힌 나쁜 상태 예를 들어, 강박감 번뇌 초조 안달 긴장 불안 걱정 두려움 등에서의 희망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의 희망추구...‘ 등등의 상태를 말한다.
]]]] ♥> 욕구발생의 모습
]]]]] □> 현실인식 선행
기준이 후에 성립하는 경우
]]]]] □> 기준 선행
현실인식이 후에 나타나는 경우
]]]]]] ■> 기준의 발생
]]]]]]] △> 기존인식의 조합-현재 과거 미래인식과의 불일치
]]]]]]] △> 현재의 기준- 과거 미래인식과의 불일치
]]] ♡> 욕구와 희망 상상 기대 의욕과의 차이
]]]] ♥> 비교기준판단-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 ♥> 희망- ...한다면 좋겠다.‘...한다면’
]]]] ♥> 욕구- ...한다면 좋겠다.(...하지않다. 따라서 좋지않다.)...하고 싶다.
]]]] ♥> 기대-‘...할 가능성이 짙다. 있다.’
]]]] ♥> 의욕- ‘...하고 싶다.’
]]]] ♥> 공상- ‘...은 아니지만 ...이다면’
+++ 원문 93.09.02 ++
+++ H31옮김본문 95.07월-08월 ++
+++ H31옮김본문 95.07월-08월.. ++
===
즐기 람가 평안
] ⃝> /300
]] ●> 만족의 양 질 시간적 평가
만족의 양 질 시간적 평가와 즐거움과 기쁨, 보람과 가치감, 평온과 안정,
]] ●> 즐거움과 기쁨의 의미- 만족의 양 강도,
만족의 + 적인 면, - 의 해소
]] ●> 보람과 가치감의 의미
]]] ♡> 질적인 서열
]]] ♡> 만족도의 서열
]] ●> 평온과 안정의 의미
]]] ♡> 시간적인 평가
]] ●> 인식과 만족
]] ●> 인식의 다른 면
]]] ♡> 만족, 즐거움 불만 고통 희망 두려움등등의 상태
]]] ♡> 무의식
]]] ♡> 꿈
]]] ♡> 일반 감각인식
]]] ♡> 존재 판단
]]] ♡> 가치판단
+++ 원문 93.09.02 ++
+++ 원문끝 93.09.02 ++
===
다음
--------------------------------------------------------------------------------
1) 『마하반야바라밀경』42. 탄정품 (한 p.325)(T8. p308중) “佛言 一切法一性非二性 ..是一法性是亦無性是無性卽是性 是性不起不滅..”; 25. 십무품 (한 p.190)(T8. p270중) “是不滅法 非一 非二 非三 非異 ...以是故 色入無二法數...” 
2) 불교논서 가운데 중론(中論)의 오류는 대부분 이와 관련된다. 
3) 불교내 유부 경량부 유식 계열 논서의 오류는 이와 관련된다. 
4) 참고; 梶山雄一, 권오민 역, 『인도불교철학』(서울: 민족사, 1990), pp.48-. 
5) 『성유식론』(한 pp.285-295) (T31, pp.38하-40) “是諸識轉變 分別所分別 由此彼皆無 故一切唯識....”; 
6) 참고; 『성유식론』(한 pp.352-355) (T31, pp.47하-48중) “初卽相無性 次無自然性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相 生 勝義 無性...”






Ω♠문서정보♠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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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

○ 수정작업중 파일 

0

ht240

● 자신의 좋음의 충돌 문제

● 성격

- 현명한 좋음의 선택문제

- 단순한 좋음에서 행복의 규범적 추구론

- 선한 행복에서의 행복 및 보람 가치의 문제

- 개인적 희망의 현명한 선택과 결정 전제

- 이상사회, 윤리학의 기본 문제

● 구별 - 사회적 선의 판단 문제

● 인정 근거 -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의 동일성

● 문제 상황

당장 좋음 -> 나중의 좋음의 희생

나중의 좋음 -> 당장의 좋음의 희생

하나의 좋음 -> 다른 좋음의 희생

동시에 모든 좋음 추구의 곤란성

● 문제 상황의 원인

대상과 주체 상태의 변화 - 원인- 결과- 효과(그 결과)

대상과 주체의 화합을 통한 좋음의 출현

한 대상의 좋음의 변화성 - 주체, 시기, 상황별로 좋고 나쁨이 달라짐

● 좋음의 충돌의 개인적 해결방안

- 양적 판단

- 질적 판단 - 수단과 과정의 성질차이에 따른 구분

- 시간적 판단

- 당장의 좋음 우선의 문제점 -

- 미래의 좋음 우선의 문제점 - 불확실한 결과에 현재를 희생

- 인과적 원인 결과 종합 판단

- 기간적 판단 - 수단 및 결과의 지속성여부 기준

- 사회적 판단 - 수단의 지속성, 외부성, 대외적 영향, 사회적 선, 정의 기준 판단

- 대상과 주체의 변환 용이성 기준판단 - 외부현상을 변경할 것인가, 자신의 마음을 변경할 것인가? (변덕공주)

● 바람직한 방안 - 선의 판단내용에 자신의 좋음의 일치 - 좋음을 가장 많이 얻어내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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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좋음의 충돌 문제

● 성격

- 현명한 좋음의 선택문제

- 단순한 좋음에서 행복의 규범적 추구론

- 선한 행복에서의 행복 및 보람 가치의 문제

- 개인적 희망의 현명한 선택과 결정 전제

- 이상사회, 윤리학의 기본 문제

● 구별 - 사회적 선의 판단 문제

● 인정 근거 -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의 동일성

● 문제 상황

당장 좋음 -> 나중의 좋음의 희생

나중의 좋음 -> 당장의 좋음의 희생

하나의 좋음 -> 다른 좋음의 희생

동시에 모든 좋음 추구의 곤란성

● 문제 상황의 원인

대상과 주체 상태의 변화 - 원인- 결과- 효과(그 결과)

대상과 주체의 화합을 통한 좋음의 출현

한 대상의 좋음의 변화성 - 주체, 시기, 상황별로 좋고 나쁨이 달라짐

● 좋음의 충돌의 개인적 해결방안

- 양적 판단

- 질적 판단 - 수단과 과정의 성질차이에 따른 구분

- 시간적 판단

- 당장의 좋음 우선의 문제점 -

- 미래의 좋음 우선의 문제점 - 불확실한 결과에 현재를 희생

- 인과적 원인 결과 종합 판단

- 기간적 판단 - 수단 및 결과의 지속성여부 기준

- 사회적 판단 - 수단의 지속성, 외부성, 대외적 영향, 사회적 선, 정의 기준 판단

- 대상과 주체의 변환 용이성 기준판단 - 외부현상을 변경할 것인가, 자신의 마음을 변경할 것인가? (변덕공주)

● 바람직한 방안 - 선의 판단내용에 자신의 좋음의 일치 - 좋음을 가장 많이 얻어내는 방안

○ 구판 fr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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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평가에 의한 선택

◀ 죽음 허무-선

나는 죽음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다. 아니, 지금 당장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나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역시 무엇인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브라함 링컨-1)

◀ 가치

인생에는 진짜로 여겨지는 가짜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많고, 반대로 알아주지 않는 진짜 다이아모든 역시 수없이 많다. -타커 제이-2)

◀ 가치, 희망, 의욕

가장 아름다운 주제들은 당신 앞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동받고, 사랑하고, 희망을 가지고, 전율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로댕-3)

◀ 선

나는 단 한번 이 세상을 지나갈 것이다. 좋은 일일 경우 그것을 내가 행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에 그것을 행할 것이다. 나로 하여금 그것을 억제시키거나 태만을 부리게 하지 마라. 나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4)

◀ 선

< 그러나 >

눈의 색깔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눈빛은 바꿀 수 있다.

귀로 나쁜 소리를 듣지 않을 수는 없지만 들은 것은 잊어버릴 수 있다.

입의 크기는 바꿀 수 없지만 입의 모양은 미소로 바꿀 수 있다.

빨리 뛸 수는 없지만 씩씩하게 걸을 수는 있다.

목소리는 음치이지만 휘파람은 불 수 있다.

물질로 남을 도울 수는 없지만 가만히 손을 잡아 줄 수 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치장할 수는 없지만 꽃 한 송이 꽂을 수는 있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기도해 줄 수는 있다.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다 해도 마음만은 건강할 수 있다.

오늘을 잘못했을지라도 그러나 내일은 잘 할 수 있다. -작자미상-5)

◀ 봉사, 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힘의 테스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가 어떤 고생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사랑의 테스트이다. -웨스트 콧-6)

◀ 선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주지 않고 얻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망이다.

그러나 남에게 주기가 어디 쉬운가?

남에게 주는 것도 자꾸 연습을 해야 한다.

남에게 주는 연습을 게을리 하면

나에게 남아도는 것조차도 남에게 줄 가 없다.

따뜻한 눈길 한 번

따뜻한 손길 한 번,

따뜻한 말 한 번 줄 수가 없다.

가끔 내 집의 쓰레기통을 열어 보자.

남에게 필요한 것을 버린 일은 없는지,

그리고 마음의 창고도 열어 보자.

남의 것을 아끼고 쌓아 놓은 일은 없는지.......-작자 미상-7)

◀ 선, 무재칠시

사람의 좋은 말 한마디. 미소 하나, 격려의 손길 한 번, 남을 칭친하는 말 한마디는 마치 자신의 양동이에서 한 국자 덜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남의 양동이를 채워 주는 일이다. 희한한 것은 이렇게 덜어 내고도 제 양동이는 조금도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윌리엄 미첼-8)

◀ 가치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대해(大海)의 작은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들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해에 이 한 방울이 없다면, 한 방울이 부족하게 됩니다. -마더 테레사-9)

◀ 이상사회, 선, 인간관계

만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당신 같은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당신같이 산다면,

이 세상은 신이 준 낙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필립스 브룩스-10)

[개인견해] 보통의 경우에 만일 모든 사람이 자신같이 된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작은 악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불로소득, 부정행위를 비난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이 거둔 이익을 나도 간절히 원하는 경우가 많다.

◀ 선, 무재칠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제일 값이 싸게 먹히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해주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미소 지으면서 인사하고 그를 믿는 일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생에서 최고의 배당금을 가져다 줄 것이다. -조셉 머피-11)

◀ 선

인생은 어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소화 친절 그리고 일상의 작은 의무와 습관적인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해주며 인생의 성공을 가져다 주고 행복을 지켜 주는 것이다. -험프리 데이비-12)

◀ 선

삶은 짧고 우리와 동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시간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빨리 서둘러 사랑하자. 속히 서둘러 친절하자. -헨리 아밀-@@179

◀ 선

당신은 당신의 동료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라. 그것을 하는 특권 외에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무엇인가를....... -알베르트 슈바이처-13)

◀ 선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어떤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오히려 공격해 올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그들은 당신ㅇ르 바로 차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당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마더 테레사-14)

◀ 선

우리는 위대한 일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커다란 사랑으로 작은 일들은 할 수 있다. -마더 테레사-15)

◀ 선

인생의 문제는 승리하는 데 있지 않다. 성숙해지고 함께 나누는 것에 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볼 순간이 왔을 때, 남보다 앞서가 남을 이겼을 때보다는 그들의 삶에 즐거움을 안겨 주었을 때, 더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된다. -해럴드 쿠쉬너-16)

◀ 선

사랑의 절대적 가치는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의 생소하고 어려운 처지를 바람직하게 만든다. 사랑은 인생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다. -조셉 토인비-17)

◀ 선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 뜯지 않는다. 한 포기의 들꽃도 꺽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의 날개가 타서 책상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18)

◀ 선한 행복

그대는 그대 자신만의 행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에 그런 행복이란 켤코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결코 그대만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오히려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에 나타난다. 그대가 사라지고 그대 안에 머물던 이기심이 사라질 때, 행복은 그대의 가슴에 가득 채워지고 그 안에서 ‘너’와 ‘나’라는 경계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바바 하리 다스-19)

◀ 선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어떤 곳으로 가건 간에 그곳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사람을......-에이브라함 링컨-20)

◀ 선

조그마한 친절이, 한마디의 사랑이, 언젠가는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 씨앗이 된다. -J. F. 카네이-21)

◀ 선

세상이 자신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게 되돌려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 -헨리 포드-22)

◀ 선

인생은 신나는 것이다. 가장 신나는 것은 남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는 때이다. -헬렌 켈러-23)

◀ 선의 실행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말, 좋은 글을 실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빌 모이어스-24)

◀ 선

행복은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주는 자의 몫이다. 다른 사람에게 배려 깊게 행동하는 것, 그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말해 주는 것, 감사하다는 친절의 말을 하는 것,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남의 짐을 들어 주는 것, 그것은 당신의 일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가슴에 간직하고 있던 어떤 것을 꺼내어 남의 가슴에 따스하게 안겨 주는 것이다. -찰스 H. 벌-25)

◀ 선

집안에서는 늘 화목하게 지내라! 화목하면 자연히 즐거움이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즐거운 일은 함께 즐거워하라! 그리고 역경에 빠지더라도 양심과 도의를 힘으로 삼고 결코 낙망하지 말라!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거든 반드시 부드러운 말로 타일러라.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늘 고맙게 생각해야 하며 결코 세상이나 고난을 원망하지 말라. -알랭-26)

◀ 선

인생에 있어서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 줄 때,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에델 퍼시 앤드루스-27)

◀ 선

각자 자신의 문 앞을 쓸게 하라. 그러면 온 세상이 깨끗해질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28)

◀ 선

누군가 좋은 일을 하면 칭찬하라. 그대의 칭찬이 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세뮤얼 드윈-29)

◀ 선

세상에 웃음을 선물하는 사람은 자신도 곧 웃음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아름다운 말, 아름다운 웃음, 아름다운 표정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기를..... 그러면 세상도 분명히 당신을 그렇게 대해 줄 테니....-에이브리엄-30)

◀ 선-싸움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면 그 싸움의 원인은 따져 볼 것도 없이 두 사람 다 옳지 못한 데 있다. 어느 한쪽이 옳았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매끄러운 겨울에는 결코 성냥불을 그을 수 없듯이.....-세네카-31)

◀ 선

만일 “인간이 무엇인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한 스스로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는 글을 내가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베토벤-32)

◀ 선

친절한 말을 하라. 그러면 친절의 메아리들을 들을 것이다. -스피커-33)

◀ 선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서 저마다 자기 배를 출발시킨다. 배에는 사랑도 싣고 희망고 포부도 싣고 또 양심과 정의도, 의리와 우정도 싣는다. 그러나 배는 너무나 많은 것을 실었기 때문에 잘 나아가지 못한다. 순조롭게 나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버리기 시작한다. 양심을 버리고 희망을 포기하고 사랑도 정의도 버리며 짐을 줄여 나간다. 홀가분해진 배는 그런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생의 끝인 항구에 도착하면, 결국 배에는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34)

◀ 선-이상사회

이 세상 어느 곳에선가 불의가 저질러진다면, 이는 이 세상 전체의 정의를 위협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상호 작용이라는 피할 수 없는 그물망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은 인간 모두의 공통된 운명이다. -마틴 루터 킹-35)

◀ 선, 가치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토머스 칼라일-36)

◀ 선

거짓을 숨길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양심이 들여다 볼 수 없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조 페티-37)

◀ 선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하라.

그대가 쓸 뜻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대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에

그대가 베풀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랫동안 계속하라. -요한 웨슬러-38)

◀ 선

‘해주었다’가 아닙니다. 저 사람을 위해서 그 일을 ‘해주었다’라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봅시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기뻣다’라고...... -스즈키 히데코-39)

◀ 선

나의 종교는...... 목숨이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콜도프스키-

◀ 선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것은 그에게 베풀 물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따스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즉 따스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갑부라 할지라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이청화-40)

[개인견해]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결국 남에게 베풀 여유를 갖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가난한 사람이다.

◀ 선-봉사

사람들은 누구나 위대해질 수 있다. 그것은 누구나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사는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봉사를 하려는데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지도, 어려운 언어를 알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몰라도 그만이다. 오로지 그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을 단순한 타인으로 보지 않는, 사랑이 불타오르는 마음말이다.-로렌스 볼트-41)

◀ 선, 정의

삶을 통하여 당신이 얼마나 성공하느냐 하는 것은, 당신이 젊은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대하느냐, 노인들에게 얼마나 온정을 가지고 대하느냐, 허기지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따스함을 가지고 대하느냐, 그리고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에게 얼마나 공정하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왜냐 하면 당신도 삶이라는 나날 중 어느 날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 카버-42)

◀ 선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 다음 그들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행복의 가장 큰길들 중 하나를 잃는 것이다. -레이 리만 월버-43)

◀ 선

오늘 시간 속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지라도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것.

오늘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내일 수많은 황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지라도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그대는 무엇을 도왔는가?

우리는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으며

사랑과 용기의 말을 줄 수 있는데,

그러나 오늘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내일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으나

오늘 그대는...... 어떻게 했는가? -워터맨-44)

◀ 선_친절

친절해라. 왜냐 하면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지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조 페티-

◀ 선

언제 죽더라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이 말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언제나 꽃이 자랄 만한 곳에는 엉겅퀴를 뽑고 꽃을 심었다는 사실을 ...... -에이브라함 링컨- 45)

◀ 선

매일 밤마다 이런 말을 하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기를......

“나는 오늘 한 사람을 좀 더 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혹은,

“나는 오늘 한 사람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혹은,

“나는 오늘 한 사람을 최소한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찰스 킹스레이-46)

◀ 선

오직 행복을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만이 완전히 행복한 사람이다. -제인 포터-47)

◀ 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남도 자신과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크 할트-48)

◀ 선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 하면 누구나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대학을 가고 학위를 따야만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식 있고 머리가 좋아야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할 줄 아는 가슴만 있으면 된다. 영혼은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이니까 -마틴 루터 킹 2세-49)

◀ 선, 베풀기

죽음의 운명이 다가올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이다. -스위팅- 50)

◀ 선 친절

작은 물방울이 모이고 작은 모래알이 모이면, 바다가 되고 대지가 된다. 작은 친절한 행동, 작은 사랑의 말은 이 세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파라다이스로 만들어 놓고야 만다. -줄리안 카르니-51)

◀ 선, 가치

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할 수 있다.

...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 낼 수 있고,

..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

한 사람의 인생이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작자미상-52)

◀ 선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친절한 행위를 하지 않고, 남에게 어떤 기쁨도 되어 주지 않으며, 남을 돕는 일도 없이 보낸다는 것은, 먼 훗날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비춰주는 즐거운 추억을 놓치는 것이다. -존 워너메이커-53)

◀ 선, 희망의 실현

당신이 하는 일이 의미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이 오를 산과 인생의 목표를 확인하라. 나는 근본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산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과 매일 마주친다. 그들은 전혀 심오한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은 어떤 일에 20년 이상씩 그들의 생애를 바친다. 갑자기 그들은 뒤를 돌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뭘하고 있는 거지?” -폴 스톨즈-54)

◀ 선

어떤 노인이 뜰에서 묘목을 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물었다.

“당신은 그 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려면 얼마쯤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한 50년 정도는 지나야 열매가 맺겠지요.”

“그럼, 그렇게 오래 사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니오, 당연히 그렇지 않겠지요. 내가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많은 맛있는 열매가 열려 있었지요.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묘목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도 그와 같은 것일 뿐이지요.” -마빈 토케이어-55)

◀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

만일 당신이 당신에게 절대로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어떤 선행을 행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벌어야 할 돈을 벌었다고 해도 당신은 하루를 완벽하게 산 것이 아니다. -루스 스멜처-56)

◀ 선, 보시, 무재칠시

값진 선물을 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하지만 그대는 돈이 별도 없든지, 아니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선물은 꼭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부자들만이 선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귀한 선물을 주는 데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갈 수 없다.

관심, 칭찬, 배려, 시간, 대화, 경청, 이해, 그리고 특히 사랑. 바로 이런 것들이 귀한 선물이다.

이것은 당신이 충분히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 어떠한 것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작자미상-57)

[개인견해] 선한 일을 하는 데 꼭 어떤 여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 선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도 주위에 있는 한 사람만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발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레나드 스트릭랜드- 58)

◀ 선

子 曰 爲善者 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 갚는다.”59)

◀ 선

漢 昭烈 이 將終에 勅 後主 曰 勿以 善小而 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한(漢)나라의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장차 죽으려 할 때 후주(後主)에게 경계하여 말하였다. “작은 선이라고 해서 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작은 악이라고 해서 하지 말라.”60)

◀ 선

莊子 曰 一日不念善이면 諸惡이 皆自起니라

장자(莊子)가 말하였다. “하루라도 선(善)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惡)이 저절로 일어난다.”

61)

◀ 선

太公 曰 見善如渴 하고 聞惡如聾하라 又曰 善事란 須 貪하고 惡事는 莫 樂하라

태공(太公)이 말하였다.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른 듯이 하며, 악한 말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 또 “착한 일이란 모름지기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이란 즐기지 말라.”62)

◀ 선

司馬溫公 曰 積金以遺子孫이라도 未必 子孫이 能盡守요 積書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이 能盡讀이니 不如 積陰德於冥冥之中하여 以爲子孫之計也니라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였다. “돈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지킬 수는 없으며, 책(冊)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 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읽는다고 볼 수 없다. 남모르는 가운데 덕(德)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계교를 하느니만 같지 못하다.”63)

◀ 선

東嶽聖帝 垂訓曰 一日行善이면 福雖 未至나 禍自遠矣 요 一日行惡이면 禍雖未至나 福自遠矣니 行善之人은 如 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라도 日有所增하고 行惡之人은 如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라도 日有所虧니라

《동악성제수훈(東嶽聖帝垂訓)》에 말하였다. “하루 선한 일을 행하면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재앙)는 저절로 멀어질 것이요, 하루 악한 일을 행하면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저절로 멀어질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로 더해지는 것이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 갈려 닳아 없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로 이지러짐이 있다.”64)

◀ 선

子曰 見善如不及하고 見不善如探湯하라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선함을 보거든 미치지 못할 것과 같이 하고, 선하지 않음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65)

◀ 선

種瓜得瓜요 種豆得豆 니 天網이 恢恢하여 而不漏 니라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어서 보이지는 않으나 새지 않는다.66)

◀ 선

子曰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니라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나쁜 일을 하여>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67)

◀ 인간관계, 보시, 선

施恩 이어든 勿求報하고 與人이어든 勿追悔하라

은혜를 베풀었다면 보답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하지 말라.68)

◀ 선, 인간관계

景行錄云 結怨於人을 謂之種禍(1) 요 捨善不爲를 謂之自賊(2) 이라

《경행록(景行錄)》에 말하였다. “남과 원수를 맺는 것은 재앙의 씨를 심는 것이라 하고, 선한 것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라 한다.” 69)

◀ 선

悶人之凶하고 樂人之善하며 濟人之急하고 求人之危 니라

남의 흉한 것을 민망히 여기고, 남의 선한 것을 즐거워하며, 남의 급한 것을 건지고, 남의 위태로움을 구제하라.70)

◀ 인간관계, 선

性理書云 接物 之要는 己所不欲을 勿施於人하고 行有不得이어든 反求諸己니라

《성리서(性理書)》에 말하였다 “남을 접하는 요체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고, 행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거든 돌이켜 자기 몸에서 찾아라.”71)

◀ 선

周易曰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 이요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어늘 小人은 以小善으로 爲无益而弗爲也하고 以小惡으로 爲无傷而弗去也 니라 故로 惡積而不可掩 이요 罪大而不可解 니라

《주역(周易)》에 말하였다. “선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악을 쌓지 않으면 몸을 망치지 않을 수 있거늘, 소인은 자그마한 선은 유익함이 없다고 하여 행하지 않고, 자그마한 악을 해로움이 없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 가리지 못하고 죄가 커져 풀지 못한다.”72)

◀ 가치

너는 지갑을 잃으면 크게 소동을 피우면서, 어찌하여 너의 가장 소중한 재산인 ‘마음의 선량함’을 잃고도 아깝다고 느끼지 않는 것인가? -에픽테토스-73)

◀ 선

인간의 나쁜 습관의 하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소중히 하며, 자신의 행복만을 바라는 것이다. -파스칼-74)

◀ 기독교의 선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또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그리고 주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고 옛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 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운수를 미워하여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복음 제 5장 21-22, 27-28, 33-34, 37-48절-75)

◀ 기독교의 선

첫 번째 계율- 너를 창조한 신을 사랑하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희의 적을 위해, 너희를 공격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단식하라. 왜냐 하면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하는 것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느냐? 그들은 자민족을 사랑하고 타민족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적이 있다. 너희가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할 때 너희에게는 적이 없을 것이다.

육제적, 세속적 자극을 경계하라.

만일 네 오른뺨을 치는 자가 있거든 그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라. 그러면 너는 완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자기와 함께 1베르스타의 길을 갈 것을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2베르스타의 길을 가거라. 만일 네 겉옷을 빼앗는 자가 있거든 속옷도 내주어라. 만일 너에게서 네 것을 가져간 자가 있거든 도로 찾아오지 말라. 왜냐 하면 그것은 원래 해서는 안 될 짓이기 때문이다. 너에게 구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주어라. 그리고 그것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말라. 아버지이신 신은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준 것을 모든 사람이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계율을 따르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는 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히 받고자 하는 자는 불행하다. 왜냐 하면 가난하여 받는 자만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가난하지 않으면서 받는 자는 자기가 무엇 때문에 받았는지를 밝혀야 한다 마몬(재물의 신-역주)의 그물에 걸린 자는 자신이 한 행위 때문에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것을 버릴 때까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씌어 있다. 너의 자선은 네가 그것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알기 전에 네 손에서 땀처럼 떨어지게 하라고.

두 번째 계율.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바꿔 말하면, 남이 너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행동은 너도 남에게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어린아이의 마음을 더럽히지 말라,

방탕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요술을 하러 가지 말라,

독살하지 말라,

낙태하지 말라,

갓난애를 죽이지 말라,

네 이웃이 가진 것을 탐내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더러운 말을 입에 담지 말라,

더러운 생각을 품지 말라,

두 마음을 가지지 말라,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말라,

일구이언은 죽음의 그물이다.

거짓되고 공허한 말을 하지 말고,

항상 진심으로, 해야 할 말만 하라.

탐내지 말라,

빼앗지 말라,

속이지 말라,

음울하지 말라,

오만하지 말라,

네 이웃에게 악의를 품지 말라,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어떤 자는 충고하고, 어떤 자를 위해서는 기도하며, 어떤 자는 진심으로 사랑하라.

3

나의 자녀들이여!

모든 악과 악에 가까운 것을 피하라.

성내지 말라,

노여움은 살상으로 이어진다.

격정에 사로잡히거나 말다툼을 하고 흥분하지 말라.

이러한 모든 것에서 살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의 자녀들이여!

색욕을 피하라,

색욕은 방탕으로 이끈다.

더러운 말을 입에 담지 말며

너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보지 말라,

이것은 간음으로 이끈다.

나의 자녀들이여!

점을 치지 말라, 왜냐 하면 그것은 우상숭배로 이끌기 때문이다.

요술을 부리지 말라, 마술을 부리지 말라, 주술을 부리지 말라, 또 그와 비슷한 일에 끼어들지 말라.

왜냐 하면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들이여!

속이지 말라, 속이는 건 도둑질로 이끌기 때문이다.

탐욕과 했영에 사로잡히지 말라. 이러한 것도 마침내는 도둑질로 이끈다.

나의 자녀들이여!

불만을 품지 말라, 불만에서 욕지거리가 나온다.

자기만족에 빠지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이러한 것도 욕지거리로 이끌기 때문이다.

온유한 사람이 되어라, 온유함이야말로 땅을 이어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을성 있고 자비로우며 독실하고 겸손하며 선량한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어떠한 때이건 네가 들은 이 말들을 경건하게 상기하라.

자기를 높이지 말고 자기의 마음 속에 교만심을 키우지 말라.

네 마음을 높은 사람이나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향하지 말고,

올바르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향하라.

무슨 일이든 신의 뜻임을 알고,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행복으로 알라.

4,

나의 자녀들이여!

너에게 신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밤이고 낮이고 떠올리며, 그를 주님처럼 공경하라.

왜냐 하면 너에게 주에 대해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 곳에 주님도 계시기 때문이다.

언제나 성자들을 찾아 그들의 말속에서 네 마음의 평화를 찾아내기 위해 그들과 교류하라.

사람들의 분열을 바라지 말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라.

정의에 의하여 그들을 판단하여, 지체의 높고 낮음에 구애받지 말고 솔직하게 그들의 죄를 지적하라.

한 입으로 두말 하지 말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받을 때는 손을 내밀지 말고, 줄 때는 손을 오그리지 말라.

네가 네 손으로 번뇌 것을 자기 죄의 속죄로서 남에게 주어라.

주기를 망설이지 말라, 그리고 한 번 주었거든 아까워하지 말라.

왜냐 하면 너는 네 선에 대해 무엇이 그 좋은 보상인지를 알 것이므로.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얼굴을 돌리지 말고,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를 네 형제들과의 공유물로 생각하며,

어느 것 한 가지도 내 것이라고 부르지 말라. 왜냐 하면 너희 가운데 불멸의 것이 공유되고 있다면, 너희에게 육체적인 것은 더더욱 공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 또는 딸의 지도를 게을리하지 말고, 어릴 때부터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길러주어라.

아랫사람들을 턱으로 부리지 말라. 그들도 너와 같이 신을 믿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자포자기한 나머지 그들과 너희의 위에 있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명령하지 말고, 너의 영혼이 지정하는 자에게 명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위선과 신을 거스르는 모든 것을 미워하라. 주의 계율을 저버리지 말고, 네가 받은 계율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며 아무것도 빼지 말라. 죄를 저질렀으면 신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그것을 참회하고, 마음에 악의를 품은 채 기도하려 하지 말라. 이것이 생명의 길이다. -열두 사도에 의해 사람들에게 전해진 주의 가르침-76)

◀ 선

왜 불행하고 왜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원하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을 위해 산다면, 서로 다투고 증오하며 싸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러므로 그들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있어도 그 욕망에는 한계가 없어서, 더 많이 얻으려고 혈안이 됩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애써 손에 넣은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손에 넣은 사람들을 시기하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어느 청년단에 보내는 메시지)-톨스토이-77)

◀ 선

인간의 선덕은 그 사람의 특별한 노력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행위에 달려 있다. -파스칼-78)

◀ 선-채식주의

“만일 양이나 토끼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면 늑대나 쥐도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채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거기에 대해 채식주의자들은, “그렇다, 우리는 그런 동물들도 가엾게 여기고 있고 또 동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죽이지 않고 그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고, 그것은 틀림없이 발견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채식주의자들은 대답한다.

“하지만 식물에도 또한 생명이 있지 않은가, 당신들은 바로 그 식물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하고 채식 반대론자들은 또 말한다. ...이상적인 채식주의는 과일을 먹는다. 즉 씨앗을 감싸고 있는 과육을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과, 복숭아, 수박, 호박, 딸기 등등이 그것이다... 그런 것을 먹으면 식물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없다. 그리고 그 맛있는 과일, 즉 씨앗을 감싸고 있는 과육을 사람들이 따 먹음으로써 씨앗이 사방에 퍼져, 그 식물을 더욱 증식시킨다는 점에도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다. 79)

◀ 선

욕망과 번뇌를 극복하라. 그러면 이 세상의 악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전설-80)

◀ 선

사랑이라는 것은 위험한 말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사악한 행위가 저질러지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악한 행위가 자행되며,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큰 사악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81)

◀ 선

스스로 죄를 지으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스스로 죄를 짓지 않으면 스스로 깨끗하다. 깨끗함과 더러움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아무도 남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 -법구경 ‘자신의 장’-82)

◀ 선[기독교]

‘남과 자신을 구별해서는 안 된다. 화내지 말고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 자선은 남몰래 베풀어야 한다. 맹세하지 말라. 심판하지 말라. 누구와도 화해하고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기도할 때는 은밀한 장소에서 조용히 해라. 83)

◀ 선

진정한 행복은 오직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고 선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해롭지 않고 유익한 존재가 되고 싶으면 만인의 행복과 일치하는 것만 하라.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84)

◀ 선

우리가 행하는 것, 경함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도 더욱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85)

◀ 선

마음이 맑고 오만하지 않은 사람, 온유하고 절조가 있고 순수한 사람, 모든 사람을 똑같이 자비와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 선행을 원하며 허영심을 버린 사람,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생명의 주재자가 살고 있다. 대지가 자신이 키우는 아름다운 초목으로 장식되듯, 마음속에 생명의 주재자가 사록 있는 사람은 선덕으로 장식된다. -비시누 푸라나-86)

◀ 칸트의 도덕원리

자기 자신을 향해 내 행위의 준칙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한 법칙이 될 수 있는지 어떤지 물어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행위의 준칙은 옳지 않은 것이며, 그것은 그 준칙에서 나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근본적 법칙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부정한 것이다.-칸트- 87)

[개인견해]

◀ 선과 자유

순종도 그것이 선과 진실에 대한 것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칼라일-88)

◀ 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허풍쟁이, 교활한 사람, 부당한 비방을 일삼는 자, 뻔뻔하고 불손한 자, 불량배들의 생활은 편안해 보이고, 끊임없이 순결한 삶을 목표로 노력하고, 늘 온화하며, 사려 깊고, 욕심 없는 자의 삶은 고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전자는 언제나 불안과 동요 속에 있고 후자는 언제나 평화롭다. -부처의 금언-89)

◀ 선

네가 모든 종교의 교리를 다 알더라도,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선량함뿐이다. -인도의 쿠랄-90)

◀ 선

모든 선한 일은 자비이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도 자비이다. 길에 굴러다니는 돌을 치우는 것도 자비이다. 선덕을 베풀라고 이웃에게 권하는 것 역시 자비이다. 나그네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도 자비이다. 이웃의 얼굴을 보고 미소 짓는 것 또한 자비이다. -마호메트-91)

◀ 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그 사람의 도덕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보증이다. 참으로 동정심이 깊은 사람은 결코 남을 모욕하지 않고 화나게 하지 않으며,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또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모두를 용서한다. -쇼펜하우어-92)

◀ 선

인간의 마음의 문이 덕성을 향해 열릴 때 새롭고 신비롭고 기쁘고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에머슨-93)

◀ 선

오락을 위해 또는 식욕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죄악임이 명백해진 오늘날, 사냥과 육식은 해도 괜찮은 행위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저질러진 모든 악행과 마찬가지로, 그 뒤에 더욱 끔찍한 악행을 부르는 명백한 악행이다. 94)

◀ 선

적에 대해서도 악을 행하지 말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선덕이다.

남을 멸하려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파멸한다.

악을 행하지 마라. 가난은 악을 정당화할 수 없다. 만일 악을 행한다면 더욱 더 가난해지리라.

사람들은 적의 악의에서 비롯되는 악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지만 자신의 죄악에서 생기는 악으로부터는 결코 달아날 수 없다. 그것은 물체에 따르는 그림자처럼 그들의 뒤를 따라와서 결국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슬픔에 쫓기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남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

만일 자신을 사랑한다면 아무리 작은 악일지라도 행해서는 안 된다. -인도의 쿠랄-95)

◀ 악, 선

‘악의 열매가 맺기까지는 악한 자도 행복을 맛본다. 그러나 악행의 열매가 익었을 때 악한 자는 악업을 받는다. .. ’하늘에도 바다에도 산 속의 동굴에도, 사람이 악행애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법구경-96)

◀ 선

덕에 이르는 두 길이 있다. 올바를 것, 생명이 있는 것에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 그것이다. -마누법전-97)

◀ 선

선을 행하면서 그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라. 98)

◀ 선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마태복음 제6장 1-2절-99)

◀ 선, 지혜

누구나 인생의 목표는 단 하나, 즉 선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선의 완성으로 이끄는 지식만이 진정 필요한 지식이다. 100)

◀ 선

신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동물을 학대하지 말라. 기꺼이 일해 주는 동안에는 그들을 부리고, 지치면 쉬게 해주며, 말 못하는 그들에게 충분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라. -마호메트-101)

◀ 선

작은 악에 대해 이 정도쯤이야 하고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그만 물방울이 모여 항아리 하나를 채운다.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악을 저지르다가 마침내 온몸이 악으로 가득 차버린다.

선에 대해서도 어차피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그릇을 가득 채우듯, 선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 또한 조금씩 선을 쌓아가다가 마침내 온몸이 선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될 것이다. -부처의 잠언-102)

◀ 선

언어와 절제와 노력으로 네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 사랑의 사업을 하라. 행여 나쁜 말을 입에 담지 말고 나쁜 행위를 피하며, 필요하면 용기를 내고 잘못된 수치심을 극복하며, 해야 할 말을 하고 좋은 일, 사랑이 넘치는 일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소한 일이요, 눈에 뜨지 않는 일이지만, 이처럼 조그마한 씨알에서 온 세상을 그 가지로 가득 덮는 사랑의 거목이 자라난다. 103)

◀ 선

선한 삶의 길은 좁다. 그러나 그 길을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104)

◀ 죽음과 선

죽음에 대한 준비는 오직 한 가지, 선한 생활이 있을 뿐이다. 생활이 선하면 선한 만큼 죽음의 공포는 줄어들고 가벼워진다. 105)

◀ 선

선한 일에 대해서 그 위에 또 어떠한 보답을 바란다는 말인가? 보답은 이미 인간이 선한 일을 행하면서 경험하는 그 기쁨 속에서 얻어지고 있다. 그 외의 모든 보답은 이 같은 기쁨을 말살하는 것이다. 106)

◀ 선

무릇 선행은, 그것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행해졌을 때, 그리고 그것을 행한 사람이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과일 나무가 열매를 맺어 모두가 그것을 먹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듯이 선을 행했을 때 비로소 참된 선이 된다. 107)

◀ 선의 결과

만일 너희가, 상대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익을 줄 것을 계산해서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한다면, 너희는 너희의 선에 대해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아무런 계산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푼다면, 너희는 사람들로부터 감사도 받고 이익도 얻을 것이다. 모든 일이 이와 같다. -존 러스킨-108)

◀ 선과 기쁨

선을 행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자기가 행한 선을 아무도 모른다면 그 기쁨은 더욱 더 커진다. 109)

◀ 선

동물에 대한 인간의 행위에는 아무런 도덕적 의미가 없다는 생각, 더욱 일반적으로 말해 인간은 동물에 대해 아무런 의무가 없다는 생각 속에는 참으로 무서운 잔인성과 야만성이 도사리고 있다. -쇼펜하우어-110)

◀ 선

참으로 기묘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악에는, 즉 남이 나에게 가하는 악,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악에는 분개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자기 자신의 악과는 전혀 싸우려 들지 않으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11)

◀ 선

어진 사람은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이를 행할 힘이 부족한 것을 한탄할지언정,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거나 잘못된 비판을 하는 것을 한탄하지 않는다. -중국금언-112)

◀ 선

영혼에 있어서의 선은 육체에 있어서의 건강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진실로 몸에 배어 있을 때 선은 눈에 띄지 않는다. 113)

◀ 진정한 선, 명예

진정한 선행은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자기 이름도 알리지 않는다. -노자-114)

◀ 선

남몰래 선행을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라. 그 때 비로소 너는 선행을 하는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라, 선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식 자체가 선한 생활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다. 115)

◀ 선

선량함이 습관이 되어 버린 상태보다 자기 생활과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은 없다. 116)

◀ 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뭔가 눈에 보이는 일, 이를테면 집을 짓고 밭을 갈고 가축을 치고 과일을 거둬들이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영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영혼을 생각하는 것, 즉 매일 조금씩이나마 선량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이고, 그 밖의 눈에 보이는 모든 일들은, 그 영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유익함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7)

◀ 선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는 오만과 탐욕, 음욕, 질투, 분노, 원한 등이 생기고, 하느님에게 바탕을 둔 모든 사람의 일체감으로부터는 온유와 자기 희생, 그리고 내면의 평화, 즉 지상의 고통을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순수한 기쁨이 태어난다. -라므네-118)

◀ 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자는 적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넓은 길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진정한 길은 좁아서 한 사람씩밖에 들어갈 수 없다. 거기에 들어가려면 군중과 함께 걸어갈 것이 아니라 부처나 공자, 소크라테스, 그리스도 같은 고독한 사람의 뒤를 따라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 또 우리 모두를 위해 차례차례 똑같이 좁은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다. -류시 말로리-119)

◀ 선

먼저 약탈을 중지하고, 그 뒤에 자선을 베풀어라. 부정한 돈에서 손을 뗀 뒤, 그 손을 이웃을 위해 내밀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제 손으로 어떤 사람의 옷을 벗겨, 같은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입힌다면, 우리의 자선행위가 곧 범죄행위에 대한 방아쇠가 되는 셈이다. 그 같은 자선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요한-120)

◀ 선

만일 남에게 선을 가르칠 수 있는데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가장 소중한 형제를 잃게 될 것이다. -중국격언-121)

◀ 선

부처는 말했다. “영혼에 봉사하는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캄캄한 집안에 빛을 가지고 들어온 것과 같다. 어둠은 이내 걷혀 버린다. 오직 그와 같은 생활을 굳게 지키도록 하라. 그렇게 한다면 그대의 마음 속에 완전한 광명의 세계가 임하게 될 것이다. 122)

◀ 선, 교육의 목적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게 하는 것이다.

결백하고 정직할 뿐만 아니라, 결백과 정직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정의에 어긋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의를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존 러스킨-123)

◀ 인간관계, 악에 대해

鋤奸杜倖,要放他一條去路.

서간두행,요방타일조거로.

若使之一無所容,譬如塞鼠穴者,一切去路,

약사지일무소용,비여색서혈자,일절거로,

都塞盡,則一切好物,俱咬破矣.

도색진,칙일절호물,구교파의.

간악한 사람을 제거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막으려면

달아날 길을 열어 줘야 한다.

만일 그들에게 몸둘 곳이 없게 하면,

쥐구멍을 틀어막는 것과 같다.

도망갈 길이 모두 막혀 버리면

귀중한 기물을 물어뜯고 말 것이다.124)

때로는 속는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125)

◀ 선

君子之心事,天靑日白,不可使人不知.

군자지심사,천청일백,불가사인부지.

참된 사람은 마음을

하늘처럼 푸르고 태양처럼 밝게 하여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126)

-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모두 잘 알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나 하늘이 자신의 마음을 다 안다고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우선 자신의 마음이 착해진다.

- 외부에 드러나는 말이나 행위, 태도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에 예절에 맞게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는

그런 통제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든 나쁜 생각, 음험하거나 음탕한 생각들을 쉽게 품고 이에 마음이 오랫동안 머무르기 쉽다.

그래서 속 생각과 겉 말, 행동이 서로 다른 이중 인격의 생활을 하기 쉽다.

그러나 이 두 영역은 그렇게 독립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

말, 행위, 태도는 평소의 생각이 기초되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지는 속 마음이 결정하기 때문에 속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마음 속부터 깨끗해지지 않으면, 완전한 선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도, 외부에 드러나는 말과 행위, 태도처럼 일정한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이 때 자신의 마음도 다른 사람이 다 안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쉽게 통제해나갈 수도 있다.

- 한편 더 나아가 선한 이는 다른 사람을 악에서 선으로 유도 선도해 나갈 의무도 있다.

따라서 혼자만 선한 마음을 갖고 고립되어 지내려 하지 말고,

모든 이에게 선한 뜻을 표명하고 이 선에 이끌어 들일 필요도 있다.

- 자신의 신조에 거리끼는 점이 없으면 매사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며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에는 거짓이 없고 자신감이 있기에 남들이

신용하게 된다. 127)

◀ 선

面前的田地,要放得寬,使人無不平之歎.

면전적전지,요방득관,사인무불평지탄.

身後的惠澤,要流得久,使人有不궤之思.

신후적혜택,요류득구,사인유불궤지사.

살아 있을 때의 마음은

활짝 열어 너그럽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하지 않도록 하라.

죽은 후의 혜택은

오래도록 흐르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부족한 느낌이 없게 하라.128)

◀ 선_ 양보

徑路窄處,留一步與人行.滋味濃的,減三分讓人嗜.

경로착처,유일보여인행.자미농적,감삼분양인기.

此是涉世一極安樂法.

차시섭세일극안락법.

작고 좁은 길에서는

한 걸음쯤 멈추어 남을 먼저 가게 하라.

맛있는 음식은

삼등분으로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즐기게 하라.

이것이 세상살이의 가장 안락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129)

◀ 선_반성

糞蟲至穢,變爲蟬而飮露於秋風.腐草無光,化爲螢而輝采於夏月.

분충지예,변위선이음로어추풍.부초무광,화위형이휘채어하월.

固知潔常自汚出, 明每從晦生也.

고지결상자오출, 명매종회생야.

굼벵이는 더럽지만

매미로 변하여 가을 바람에 맑은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반딧불로 변해서 여름밤을 빛낸다.

깨끗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항상 어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130)

◀ 선의 실현

進德修道,要個木石的念頭.若一有欣羨,便超欲境.

진덕수도,요개목석적염두.약일유흔선,변초욕경.

濟世經邦,要段雲水的趣味.若一有貪著,便墮危機.

제세경방,요단운수적취미.약일유탐저,변타위기.

도와 덕을 닦아나감에는

목석 같이 굳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만일 한번 탐내고 부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면

곧장 물욕의 세계로 치닫게 된다.

세상을 구하고 나라를 다스림에는

흐르는 물이나 구름처럼 맑은 취미를 가져야 한다.

만일 한 번 탐욕에 집착하게 되면

금방 위기에 떨어질 것이다.131)

◀ 선

肝受病,則目不能視.腎受病,則耳不能聽.

간수병,즉목불능시.신수병,즉이불능청.

病受於人所不見,必發於人所共見.

병수어인소불견,필발어인소공견.

故君子欲無得罪於昭昭,先無得罪於冥冥.

고군자욕무득죄어소소,선무득죄어명명.

간이 병들면 눈이 멀게 되고

콩팥이 병들면 귀가 들리지 않는다.

병은 사람이 볼 수 없는 데서 생겨서

반드시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밝은 곳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면

먼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132)

『대학大學』에도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반드시 삼가하지만 소인은

한가하면 선하지 못한 짓을 한다.君子必愼 其獨也 小人間居 爲不善'고 하였다.133)

◀ 선, -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

施恩者,內不見己,外不見人,則斗粟可當萬鍾之惠.

시은자,내불견기,외불견인,즉두속가당만종지혜.

利物者,計己之施,責人之報,則百鎰難成一文之功.

이물자,계기지시,책인지보,즉백일난성일문지공.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안으로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밖으로 받을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한 알의 곡식도 만 섬의 은혜가 된다.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자기가 베푼 은혜를 따지고 보상을 바란다면

비록 아무리 많은 돈일지라도

한 푼의 공도 이룰 수가 없다.134)

◀ 대가를 바라면서 선을 베푸는 것은 장사치가 물건을 파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장사꾼이 물건을 받고 파는 것에 차익을 거두는 일 이외에 어떤 은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약성경新約聖經』의 산상수훈山上垂訓에 나오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는 내용과 맥을 같이 하는 동양적 미덕이라 하겠다.135)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은혜를 베푼 상대방에게서 보은을 받지

못하더라도 어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것이니 은혜란 돌고 도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136)

◀ 선

春至時和,花尙鋪一段好色,鳥且전幾句好音.

춘지시화,화상포일단호색,조차전기구호음.

士君子,幸列頭角,復遇溫飽,

사군자,행렬두각,부우온포,

不思立好言行好事,雖是在世百年,恰似未生一日.

불사입호언행호사,수시재세백년,흡사미생일일.

봄이 되어 화창하면

꽃들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새들은 고운 노래를 지저귄다.

사람이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어

부유하게 살더라도

좋은 말과 좋은 일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백년을 살아도 하루도 살지 않음과 같다.137)

◀ 선

爲惡而畏人知,惡中猶有善路.

위악이외인지,악중유유선로.

爲善而急人知,善處卽是惡根.

위선이급인지,선처즉시악근.

악한 일을 하고 나서

남이 알까봐 두려움을 갖는 것은

아직 악함속에도 선으로 향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서두르는 것은

아직 그 선 속에 악의 뿌리가 남았기 때문이다.138)

◀ 선

心不可不虛.虛則義理來居.

심불가불허.허칙의리래거.

마음을 항상 비워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비워야 정의와 진리가 그곳에 와서 산다.139)

허虛는 마음이 외부의 유혹 등에서 자유로움을 가리키며,

편견과 독선 따위는 버려서 마음을 비우되,140)

◀ 선

暗中不欺恩,明處有受用.

암중불기은,명처유수용.

어두운 속에서 속이고 숨기는 일이 없으면

밝은 곳에서 그 보람을 누릴 수 있다.141)

◀ 선, 인간관계

施人,毋責其報.責其報,倂所施之心俱非矣.

시인,무책기보.책기보,병소시지심구비의.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면

그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말라.

보답을 바란다면

베풀었던 마음과 모든 것이 그릇된 것이다.142)

◀ 선

貞士無心邀福,天卽就無心處유其衷.

정사무심요복,천즉취무심처유기충.

憸人著意避禍,天卽就著意中奪其魄.

섬인저의피화,천즉취저의중탈기백.

可見天之機權最神.人之智巧何益?

가견천지기권최신.인지지교하익?

뜻이 곧은 선비는 애써 복을 구하지 않아도

하늘은 그 구하지 않는 자리로 나아가서

그 마음을 열어 준다.

음흉한 사람은 불행을 피하려고 애쓰지만

하늘은 그 애쓰는 속으로 찾아가

그 넋을 빼앗는다.

보라, 하늘의 힘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인간의 지혜와 잔재주가 무슨 소용 있으랴.143)

◀ 선

平民肯種德施惠,便是無位的公相.

평민긍종덕시혜,변시무위적공상.

士夫徒貪權市寵,竟成有爵的乞人.

사부도탐권시총,경성유작적걸인.

평민이라도

기꺼이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면

벼슬 없는 재상이 되고

고관 대작도 권세에 탐닉하고 은총을 판다면

마침내 벼슬 있는 거지가 된다.144)

◀ 선

君子而詐善,無異小人之肆惡.

군자이사선,무리소인지사악.

君子而改節,不及小人之自新.

군자이개절,불급소인지자신.

군자로서 위선 된 것은

소인이 악을 거침없이 행하는 것과 같다.

군자로서 지조를 꺾는 것은

소인이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도 못한다.145)

◀ 선

此心常看得圓滿,天下自無缺陷之世界.

차심상간득원만,천하자무결함지세계.

此心常放得寬平,天下自無險側之人情.

차심상방득관평,천하자무험측지인정.

내 마음을 살펴 항상 원만하게 한다면

세상은 한 점 결함이 없는 세계가 될 것이며

내 마음을 열어 놓아 항상 너그럽게 한다면

세상에 험악한 인정이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146)

◀ 선

若僞妄之人,形骸徒具,眞宰已亡,

약위망지인,형해도구,진재이망,

對人則面目可憎,獨居則形影自괴.

대인칙면목가증,독거칙형영자괴.

거짓된 사람은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을 뿐

참 모습은 이미 사라져 없어

사람을 대하면 얼굴도 흉하게 보이고

혼자 있을 때는

제 모습과 그림자에 스스로 부끄러워진다.147)

◀ 선

市私恩,不如扶公議.

시사은,불여부공의.

사사로이 은혜를 주고받음은

공의를 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148)

◀ 인간관계 _선의 추구

曲意而使人喜,不若直躬而使人忌.

곡의이사인희,불약직궁이사인기.

뜻을 굽혀 사람들의 환심을 얻기보다는

자신을 곧게 지켜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게 낫다.149)

◀ 선

勝私制欲之功,有曰識不早,力不易者.

승사제욕지공,유왈식부조,역불이자.

有曰識得破,忍不過者.

유왈식득파,인불과자.

蓋識是一顆照魔的明珠,力是一把斬魔的慧劍.兩不可少也.

개식시일과조마적명주,역시일파참마적혜검.양불가소야.

사리 사욕을 억제하는데

빨리 깨닫지 않으면 억제가 어렵다는 이도 있고

비록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이겨 낼 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지식은 악마의 정체를 밝히는 한 알의 밝은 구슬이며,

의지는 악마를 베는 지혜의 칼이다.

두 가지 모두가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150)

◀ 명예, 선

惡忌陰.善忌陽.故惡之顯者禍淺,而隱者禍深.

악기음.선기양.고악지현자화천,이은자화심.

善之顯者功小,而隱者功大.

선지현자공소,이은자공대.

악한 일은 그늘에 숨어 있기를 싫어하고

선한 일은 겉으로 드러나기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드러난 악은 재앙이 덜하고

숨어 있는 악은 재앙이 깊으며

드러난 선은 공로가 덜하고

숨어 있는 선은 그 공로가 크다.151)

◀ 선

士君子,貧不能濟物者,遇人痴迷處,出一言提醒之,

사군자,빈불능제물자,우인치미처,출일언제성지,

遇人急難處,出一言解救之,亦是無量功德.

우인급난처,출일언해구지,역시무량공덕.

군자로서 가난하여

물질적으로 사람을 도울 수 없더라도,

어리석음으로 방황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말로 깨우쳐 주고

위급하고 곤란한 처지의 사람에게

한마디 말로써 풀어 줄 수가 있다면

이 또한 무량한 공덕이다.152)

◀ 선한 목표의 결정

作人,無點眞懇念頭,便成個花子,事事皆虛.

작인,무점진간염두,변성개화자,사사개허.

사람으로서 참다운 생각이 없다면

허수아비에 불과하니

일마다 헛될 것이요.153)

◀ 인격, 선, 덕

節義傲靑雲,文章高白雲,

절의오청운,문장고백운,

若不以德性陶鎔之,終爲血氣之私 技能之末.

약불이덕성도용지,종위혈기지사 기능지말.

절의가 청운을 능가하고

문장이 백설의 곡보다 높다해도,

그것이 덕성으로 단련된 것이 아니라면

혈기의 사행과 기예의 잔재주에 불과하다.154)

◀ 선

謹德,須謹於至微之事.施恩,務施於不報之人.

근덕,수근어지미지사.시은,무시어불보지인.

덕행을 삼가서 실현하려면

모름지기 작은 일에 삼가 행하라.

남에게 은혜를 베풀려면

갚지 못할 사람에게 힘써 베풀라.155)

◀ 선

道是一種公衆物事,當隨人而接引.

도시일종공중물사,당수인이접인.

도는 공공의 것이니

사람마다 이끌어 행하게 하고156)

◀ 선

爲善,不見其益,如草裡東瓜,自應暗長.

위선,불견기익,여초리동과,자응암장.

爲惡,不見其損,如庭前春雪,當必潛消.

위악,불견기손,여정전춘설,당필잠소.

착한 일을 해도 이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풀 속에 난 동아처럼

모르는 사이 저절로 자라기 때문이다.

악한 일을 하고도 손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뜨락의 봄눈처럼

모르는 사이에 슬어들기 때문이다.157)

◀ 선

爲鼠常留飯,憐蛾不點燈.

위서상류반,연아불점등.

古人此等念頭,是吾人一點生生之機.

고인차등염두,시오인일점생생지기.

無此,便所謂{土木形骸}而已.

무차,변소위{토목형해}이이.

쥐를 위해 항상 밥을 남겨 두고

불나방이 가여워 등불을 켜지 않는다 했으니

옛사람의 이러한 마음은

인간이 발전할 한 점의 기틀이다.

이 마음이 없다면

사람도 흙이나 나무처럼 형체일 뿐이다.158)

◀ 지혜 _선

天賢一人,以誨衆人之愚,而世反逞所長,以形人之短.

천현일인,이회중인지우,이세반령소장,이형인지단.

....

眞天之戮民哉!

진천지륙민재!

하늘은 한 사람을 현명하게 하여

많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가르치게 했으나

세상은 오히려

제 장점만을 휘둘러 남의 단점만을 드러내려 한다.159)

◀ 물질적 부 _선

天富一人,以濟衆人之困,而世反挾所有,以凌人之貧.

천부일인,이제중인지곤,이세반협소유,이능인지빈.

眞天之戮民哉!

진천지륙민재!

하늘은 한 사람을 부유하게 하여

많은 사람의 가난을 건지려 했으나

세상은 오히려 제 가진 것만 믿고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려 든다.

참으로 천벌을 받을 일이다.160)

◀ 선, 악

子曰 不然하다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161)

◀ 물질적 부와 선

子曰 君子는 喩於義하고 小人은 喩於利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의(義)에 깨닫고, 소인(小人)은 이익(利益)에 깨닫는다.”162)

◀ 선

子路曰 願聞子之志하노이다 子曰 老者安之하며 朋友信之하며 少者懷之니라

자로(子路)가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하옵니다.”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늙은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붕우(朋友)에게는 미덥게 해주고, 젊은이를 감싸주고자 한다.”163)

◀ 선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이면 何如하니잇고 可謂仁乎잇가 子曰 何事於仁이리오 必也聖乎인저 堯舜도 其猶病諸시니라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博施〕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濟衆〕 어떻겠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을 일삼는 데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聖人)일 것이다. 요순(堯舜)도 이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을 것이다.164)

◀ 선

夫仁者는 己欲立而立人하며 己欲達而達人이니라

인자(仁者)는 자신이 서고자 함에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함에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165)

◀ 선

不忮不求면 何用不臧이리오

남을 해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면 어찌 착하지 않겠는가?166)

◀ 가치

曾子言曰 鳥之將死에 其鳴也哀하고 人之將死에 其言也善이니라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새가 장차 죽을 때에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167)

[개인견해]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린다. 따라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지금까지 집착하던 것의 가치판단을 달리하게 만든다.

◀ 선,

子曰 君子는 成人之美하고 不成人之惡하나니 小人은 反是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고, 남의 악을 이루어주지 않으니, 소인(小人)은 이와 반대이다.”168)

◀ 선

子曰 志士仁人은 無求生以害仁이요 有殺身以成仁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169)

◀ 선

孔子曰 見善如不及하며 見不善如探湯을 吾見其人矣요 吾聞其語矣로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선(善)함을 보고는 미치지 못할 듯이 하며, 불선(不善)을 보고는 끓는 물을 더듬는 것처럼 하는 자를 나는 그러한 사람을 보았고, 그러한 말을 들었노라.170)

+++ 원문 93.09.22 ++

++ H02내용첨가 96.09.02. 월요일 오전11시경 +

++ h01 시작 2000년05월01일(월)22시34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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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0

] ⃝> 보람 가치의 문제로, 참고사항

] ⃝> 행복의 규범론

++ h05 시작 2006년04월05일(수)19시28분 +

선과 행복의 모순관계

완전한 선의 개념에는 자신의 행복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완전한 선이란 자신을 포함한 전체가 영구히 행복한 상태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완전한 선의 관념에서는 모순관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타 생명은 좋고 자신은 나쁜 경우에도 그 자가 선한 경우라면, 그 타 생명의 좋음을 자신의 좋음으로 바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주체 간에 또는 시기 간에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이 서로 엇갈리는 것이 보통의 현실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선악판단을 행할 것인가? 물론 무엇을 좋아하는가는 주체별로도 다르고 시기별로도 다르다. 따라서 그 예측을 미리 정확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해결을 구할 수 있다.

우선 이 좋다 나쁘다는 주체의 판단 및 상황자체가 절대적으로 고정 변경 불가능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해결은 원천적으로 곤란하다. 이 때는 결국 입장과 시기에 따라 좋고 나쁨의 판단이 엇갈리는 선악판단의 ‘상대성’이 나타나게 되고 만다. 이는 어떤 상태가 어떤 입장에서는 좋은데 또 다른 주체의 입장에서는 나쁘다고 판단되어 서로 모순되는데 그 모순이 그대로 유지됨을 의미한다.

현실에서는 이처럼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선악을 판단하여 충돌되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죄악이다. 그러나 이를 비난하는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해 다시 탄압을 가한다. 또 이런 인류에 대한 탄압을 비난하는 이들도 소나 닭들의 대량 도축행위는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선악판단은 혼돈에 빠진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강자의 논리만이 유효하게 통용되고 만다.

이런 현상을 이론적으로만 관찰한다면 그렇게 입장 따라 좋고 나쁨의 판단이 엇갈리는 것을 그대로 일단 긍정할 수밖에는 없다. 즉 각기 다른 입장에서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마는 상대적 선악의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측면의 판단도 절대적선악의 지위는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다음에 살피는 문제는 이런 상대적선악의 상태를 가급적 절대적 선에 가깝게 변화시킬 수는 없는가하는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상대적 선의 문제는 어떤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 다른 입장에서는 나쁜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 있다. 이런 불일치를 해결할 방법은 전혀 없는가. 우선 좋다라는 심리적 판단과 이런 심리적 판단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는 외부 현상을 변경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서로 엇갈린 상태를 쌍방 의견일치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그 목표는 모든 주체의 영구적인 좋음에 있다. 물론 이런 완전한 상태는 도달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많은’ 주체의 ‘오랜’ 기간의 좋음이라는 완화된 목표점에는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상대적 선의 상태를 이처럼 도달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게 하려는 노력은 결국 상황을 선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의 부담이 된다. 즉, 선한 자가 이 둘의 방향에서 노력함으로써, 구체적으로 모든 주체가 좋다라는 판단을 하는 상태를 얻어낼 수 있다.

이론상 선의 판단에서는 좋음을 판단할 수 있는 전체 주체를 가정하고 문제를 대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를 단순화시켜 대립되는 두 당사자만 놓고 판단해보자. 따라서 구체적인 현실상황에서는 이 이론의 적용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그것은 고려할 주체가 보다 넓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이론상 어떤 구체적인 A라는 상황에 대해 나와 다른 생명간에 서로 좋다 나쁘다의 판단이 엇갈린다고 하자. 예를 들어 음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누가 먹는가에 따라 갑과 을 사이에 서로 좋음이 엇갈린다. 그리고 이 경우 갑이 그 음식을 먹는 상황을 A라고 하자.

그래서

A의 상태를 갑은 좋다고 하고 을은 나쁘다고 한다.

반대로 A가 아닌 상태에서는 갑이 나쁘다고 하고 을은 좋다고 한다.

이 때 우선 어느 일방이던지 나쁘다는 마음상태를 좋다라는 마음상태로 바꿀 수 있다면 해결이 된다. 그 방법은 결국 앞에서 본 두 가지 방법 - 욕구의 변경과 현상의 변경 - 에서 찾을 수 있다.

선한 해결책

앞에서 욕구와 현상의 변경이라는 두 방법은 쌍방이 다 이론상 가능하다.

물론 사실은 둘 다 어렵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누가 그렇게 할 것인가. 그것은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가 좋은 상태로 만들려는 선한 희망을 갖는 쪽이 이런 노력을 행하게 된다.

악한 이는 타방의 좋고 나쁨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선한 해결을 위해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선한 뜻을 갖는 일방은 욕구나 현상 변경 둘 다 가능하고 쉽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선한 자에게 요구되는 규범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선한 자신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나 선택 가능하지만, 이제 상대를 배려하여 상대를 기준으로 해서 쉬운 쪽으로 자신이 행위함이 요구된다. 이는 선한 자에게 요구되는 두 번째 요구규범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만일, 상대가 어떤 욕구를 고집하고, 실현시키기를 원한다고 하자. 이는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욕구의 포기가 어려운 경우다.

이때는 선한 일방이 자신에게 나쁜 상태를 참고 받아들이도록 욕구의 변경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타방이 좋게 되도록 현상을 바꿔주려 노력한다.

또 반대로 상대가 욕구의 포기나 변경이 쉽고, 실현은 사실상 어려운 경우라고 가정해보자.

이때는 선한 일방이 자신에게 좋은 상태를 실현시키고, 남도 그 상태를 좋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위 요구규범 2는 극단적으로 될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남을 위해 죽고 고통받고 동시에 상대는 그로 인해 살게되고 즐거움을 받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도 선을 요구하면, 이에 대비하여,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희생정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다만 선한 자가 그 희생을 행복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주체 모두가 행복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에서도 위와 같은 충돌은 일어날 수 있다.

즉 A라는 현재의 상태는 미래의 자신에게는 B라는 상태로 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담배를 피우면 장래에는 병이 생길 수 있다.

‘현재의 담배피움’은 곧 ‘미래의 병’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담배피움이 현재의 자신에게는 좋음을 주지만, 미래의 자신에게는 병이 되어서 나쁨을 주게 된다.

이런 모순 갈등 관계에서도 앞의 남과 관계에서의 모순 갈등처럼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미래의 나를 마치 타 생명처럼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이다.

결국 위와 같은 태도는

남 또는 미래의 나를 기준으로 그들이 쉽게 ‘좋다’를 느끼게 되는 내용을 기준으로

(선한) 나 또는 현재의 내가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주는 쪽이면 재물 (물질 여건, 상황)를 베풀어주는 행위가 되며, 또 마음을 바꿔 주는 쪽이면 상대에게 선함의 이치를 알려주거나 또는 상대방의 공포나 두려움을 없애주는 행위 가 된다. 여하튼 선한 이는 이런 행위를 자유자재로 할 능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는 선한 자에게 요구되는 세 번째 규범이다.

일방의 이런 노력은 좋다 나쁘다가 엇갈릴 상태를 함께 좋음을 느끼는 완전한 선의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게 한다.

이는 선한 자의 일방적 노력을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선한 자만 때로 양보를 하고 희생과 노력을 하여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면서 음식을 혼자 차지하려는 상황에 부딪힌 어른의 입장과 같다. 선한 자가 노력하지 않으면 둘 다 나쁜 상태로 빠지거나, 또는 일방은 좋고 일방은 나쁜 상대적선의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선한 자가 위와 같이 노력함으로써 둘 다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다. 이유는 그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장차 그 모두에게 선한 결과를 다시 불러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일방이 선한 원리를 따라 행위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데 선한 자는 스스로 선한 원리에 따라 행위할 뿐만 아니라 그 원리를 여러 타 주체에게 알려 그런 원리로 모두 행위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쌍방 또는 모든 주체가 이런 행위 원칙을 받아들이는 상태가 만들어진다. 현실적으로는 어느 일방이 선의 원리를 널리 받아들이게 하여 이런 원칙을 모두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그런 경우는 나와 타, 현재의 나, 미래의 나가 모두 동일한 원칙으로 행위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자신도 재물을 베풀고자 하고, 타방도 재물을 베풀고자 하는 등으로 서로 쌍방 희생을 원하는 식으로 다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충돌은 사실 선한 충돌이며 어느 일방의 입장을 받아들인다해도 해결되기 쉽다.

이제 최종적으로 모든 주체가 동일한 원칙을 받아들이게 되면, 최종적으로는 이제 구체적으로 각 주체가 자신에게 쉬운 것을 임의로 행하면 된다는 상태가 된다.

또 각 주체는 이렇게 벌어진 어느 상태에서나 수용가능한 상태가 됨으로 완전한 선의 상태는 실현될 수 있게 된다.

행복과 선 행복을 실현하는 수단들 사이의 우선순위

많은 수단은 행복을 최종목적지로 하고 또 행복은 선한 행복이 가장 최상의 상태가 된다.

++ h09 시작 2006년05월09일(화)20시31분 +

이 가운데 가장 나은 상태는 수단도 많이 차지하고 또 행복도 하고 또 선하기도 하여, 이 모든 요소를 다 갖추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기는 어렵고 또 어떤 요소를 취하면 어떤 요소를 얻지 못하는 양자택일의 관계에 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재화를 차지하면 재화는 차지하지만, 선하게 되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 어떤 요소를 선택하고 어떤 요소를 희생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선_ 행복 _ 수단의 순서가 되어야 한다.

행복과 선도 절대적이거나 영원하지 않다.

행복과 선은 모든 것들을 추구할 때 얻고자 하는 궁극의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얻어진 행복과 선의 상태는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일시적인 감정의 상태에 그치거나, 또 어느 정도 객관적인 상태라고 할지라도 그것 역시 오래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이나 존재의 본질적인 무상성은 행복이나 선의 상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행복이나 선을 실천한다고 하여 죽음이나 무상성 앞에서 허무하게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한정시키고 있는 유한한 삶 속에서 그래도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행복과 선이다. 또 만일 죽음 이후에 어떤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요소는 현생에서의 선 밖에는 없다.

따라서 어느 경우를 예정하더라도 현실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은 행복과 선 밖에는 없다고 할 것이다.

경쟁관계에서의 선한 행복의 실현방안

++ h19 시작 2006년07월19일(수)16시37분 +

경쟁관계

어떤 희망은 그 실천과정에서 타 주체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혼자 조용히 운동하거나, 잠을 자거나, 혼자 조용히 사물들을 음미하면서 즐거워하거나, 지식을 습득하고 지혜를 닦기 위해 집중하여 사색하거나, 아름다운 인격을 닦기 위해 수련하거나, 조용히 여러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지내기 위하여 하는 등의 활동은 대체로 다른 주체의 행복과 충돌하는 경우가 적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를 예상하면 이런 경우에서도 전혀 충돌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위와 같은 경우는 어떤 주체가 이를 추구해도 타 주체의 행복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가 적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희망은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과 결과 양 측면에서 타 주체의 행복과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주체가 A를 얻으려고 하는 경우 한 주체가 A를 얻으면 나머지 주체는 그것을 얻지 못하여 불만을 느끼는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어떤 주체가 A를 얻으면 다른 주체는 결과적으로 B를 얻는 것을 방해하여 못 얻게 되는 경우 등도 예상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를 많이 예상할 수 있다. 우선 순위나 승부를 다투는 각종 운동경기나 오락(바둑, 장기, 도박, 따위) 각종 시합, 시험 등의 관계에서 서로 이기고자 하는 경우, 제한된 직위를 여러 주체가 차지하려고 다투는 경우, 또는 의식주를 비롯한 한정된 물질이나 용역을 여러 주체가 함께 원해서 서로 다투는 경우, 또는 제한된 소수만 차지할 수 있는 명예나 권력을 다투는 경우, 또는 특정한 상대로부터 서로 독점적인 사랑을 차지하려는 관계, 나아가 한 상대와 결혼을 원하는 다수간에서의 경쟁관계 등등을 생각할 수 있다.

경쟁관계에서의 행복추구의 문제점

한 주체는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희망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 가운데 무엇을 실현시켜야 하며, 포기해야 하는가를 선택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잘 선택하여 선택된 희망을 즐겁게 잘 성취하거나, 또는 즐겁게 잘 포기해야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무엇을 실현시키고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따라 그의 삶의 방향과 성격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친구를 괴롭히고자 하는 욕구는 포기하고, 학업에 충실하려는 욕구는 실현시킨다면 모범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만일 선택과정에서 반대로 행위한다면, 불량학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만일 행복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일단 선택한 것을 즐겁게 잘 실현시키고, 또 즐겁게 잘 포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행복에는 선악의 관점에서, 악한 행복, 선한 행복, 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은 행복,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행복, 또 다른 관점에서는 지혜로운 행복, 어리석은 행복 등의 여러 구별이 있을 수 있다. 행복이 단순한 행복, 또는 악한 행복 어리석은 행복이 아니라, 지혜롭고 ‘선한’ 행복이 되려면, 그 실현과 포기는, 어떤 것의 실현과 어떤 것의 포기가 선한 것인가의 관점에서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떤 자가 남을 부당하게 희생시키고 괴롭혀 행복을 얻는 경우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 왜냐 하면 그것도 그 주체에게는 만족과 행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행복은 타 주체의 행복을 깨뜨리고 그 결과 타 주체로부터 저항과 보복을 불러 일으켜 오래 유지되는 건강한 행복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이를 피해,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그리고 전체 다수의 행복에 기여하는 선한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선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경쟁관계에 놓인 희망을 포함하여 여러 희망들을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여 추구해나갈 것인가가 문제된다.

먼저 경쟁관계가 아닌 경우는, 자신의 희망의 실현이 얼마나 오랜 행복을 자신에게 가져다 줄 것인가를 고려하여 선택과 포기를 하면 될 것이다. 또 그러한 방안을 다른 다수에게 전하여 실현시키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한 삶의 방식이 된다. 여기서는 희망의 실현이 주체간에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주체가 희망을 많이 실현한다고 하여 다른 주체가 그것을 실현하는 것을 방해받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많은 지식을 섭취한다고 하여 상대적으로 다른 이가 지식의 섭취를 방해받는다는 관계는 대체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쟁관계에 놓인 희망은, 다수 주체가 실현시키려 할 때, 어느 일방은 필연적으로 그 희망이 실현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쟁관계에서의 희망도 이 경우 단순히 한 주체만의 행복만을 고려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잘 실현시키는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포함한 전체의 행복을 함께 고려하여 전체의 오래 유지되는 행복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라면 이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만일 단순한 이타주의의 입장에 서거나, 희생되는 주체의 입장을 중시하는 입장에 선다면, 이런 희망은 통상 포기해야만 하게 된다. 이는 경쟁관계에 놓이는 상대가 불행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은 희망을 항상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이타주의의 입장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상대가 탐욕스럽고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우선시하는 경우 이런 상대에게 어떤 이익을 양보함은 오히려 사회 전체에 피해를 가져다 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또 만일 어떤 자가 이타주의의 입장을 지키면, 그 결과 경쟁관계에 놓인 희망은 늘 사실상 포기하려 하지 않는 탐욕스런 주체들만이 차지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이타주의는 상대 역시 이타주의의 입장이 될 때 순환구조가 되어 누구의 행복이 존중받아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점들은 단순한 이타주의가 갖는 불합리한 점이다.

이처럼 단순한 이타주의는 단지 자신이 아닌 타방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전체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이 행복을 오래 유지하게 해주는가를 고려하고자 하는 입장과는 다르게 된다.

아래에서는 자신과 타방을 함께 포함한 전체의 행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어떤 판단이 진정한 선한 선택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경쟁관계에서 선한 행복의 추구방식

외관상 경쟁관계로 보이는 경우 우선 첫 번째로 고려해 봐야할 점은 다음이다. 우선 이 경우 비록 외관상 경쟁관계로 보이더라도 지혜를 발휘하여 다수 주체가 모두 원하는 A나 B를 얻는 방안은 없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방안에 빵이 하나밖에 없고 이 때 두 사람이 서로 먹기 위해 다투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경우 만일 빵 자체를 더 많이 구해 올 수 있다면 이런 경쟁관계 자체를 해소하고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경쟁관계가 끝내 해소될 수 없는 상황에서라면, 경쟁과정과 그 결과 측면에서 전체의 행복을 오랫동안 증진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서 경쟁규칙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공정한’ ‘정의로운’ 경쟁규칙이라고 하자.

만일 이런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확립되어 있다면, 이런 경쟁규칙을 지켜나가면서 경쟁하고 또 승리하는 것은 그 규칙이 당연히 예상하듯 전체의 행복을 오랫동안 증진시켜 나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정한_즉, 전체의 행복을 오랫동안 증진시킬 수 있는_경쟁방식이라고 할 것인가? 우선 다수가 경쟁할 때는 각기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은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어떤 필수품으로서 의식주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차지할 소수를 가려내는 방식으로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때 우선 어떤 수단과 방식을 막론하고 여하튼 그것을 실력으로 차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또는 추첨을 한다든지 아니면 최연장자와 최연소자순으로 배급을 한다든지 등등의 다양한 방식을 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각 방식은 어떤 이가 승자가 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공정한 방식인가의 판단은 그 방식을 통한 경쟁과정과 승리자의 결정이 이에 동일하게 집착하는 다수 및 기타 전체의 희망을 얼마나 만족시켜줄 수 있는가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예에서는, 어떤 이가 의식주를 차지해야 그 결과 보다 많은 다수가 의식주를 차지할 수 있는가. 또 생존 자체를 위해 누가 가장 시급하게 의식주를 해결해야되는가 등을 고려하여 소수를 선택하는 방식을 생각해낼 수 있다.

만일 어떤 경쟁규칙이 그것을 통한 경쟁과 승자의 결정으로 인해 가장 다수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이런 경쟁규칙 아래서의 경쟁과정 및 승패결정은 일종의 선한 행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것은 어차피 모두가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차선책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쟁규칙 아래서의 경쟁은 오히려 요망된다할 것이다.

즉 이런 경쟁규칙 아래서 경쟁하고 승부를 다투는 것은 선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굳이 악하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규칙 아래에서 일단 경쟁에 참가하는 자는 최선을 다해 승자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 경우 먼저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타방도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런 쌍방의 노력은 가장 최선의 이익을 다수에게 돌려줄 수 있게 기능해준다. 그리고 경쟁자의 일방이 패배하고 다른 이가 승리하더라도 패배자는 자신에게 이긴 타방이 자신보다 더 큰 이익을 사회에 돌려줄 것이므로 전체의 선을 증진한다는 입장에서 그 타방의 승리를 함께 기뻐해 주어야 한다.

공정한 경쟁규칙을 지키고 또 패배시에도 승자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자세는 널리 경쟁에 참가하려는 다수가 함께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또한 선한 자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경쟁에 공정한 경쟁규칙이 없거나, 또는 어떤 주체가 이를 지키려 하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려는 경우에 있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이는 앞서 제시한 공정한 경쟁규칙이 사실상 없거나 있어도 실현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 경우 선한 방식은 어떤 것인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경쟁에 참가하는 일방 또는 쌍방이 승리에만 너무 집착하는 경우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이처럼 많은 비리와 권모술수 부정 등이 성행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서의 승리는 승자의 탐욕의 충족이라는 기능만을 갖게 된다. 탐욕의 충족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대부분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도 차선책으로 어떤 자가 승리를 해야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될 것인가의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가 어떤 수단과 방식을 취해서 이기는 것이 좋은가는 우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비록 상대는 공정한 규칙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공정한 규칙을 준수하여 승리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기 위해서는 그가 몇 배나 실력이 앞선 경우에 가능하다. 따라서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승리를 원하는 이는 타방의 불공정한 경쟁을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을 길르는 것이 요망된다 하겠다.

만일 앞과 같이 압도할 실력이 없다면 타방과 동일하게 자신도 불공정한 방식을 통해 경쟁하는 것은 허용되는가. 우선 이 경우는 불공정한 경쟁이 가져오는 해악과 이를 통한 승리가 가져올 전체의 이익을 저울질해봐야 판단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맨손으로 격투를 하는 경쟁이라고 하자. 이 때 상대는 갑자기 총 칼 도끼 등과 같은 수단을 쓴다고 하자. 이 경우 자신은 여전히 공정한 경쟁규칙을 지켜 맨손으로도 이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하자. 이 때 자신은 그것을 차지하여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고자 원하고, 타방을 그렇지 못하다고 가정하자. 이 때 자신도 총 칼 도끼 등을 들어서 타방을 해치려 하는 것이 허용될 것인가?

여기서 이런 경우를 일률적으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 차지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이며 또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잃게되는 사회적 이익의 크기가 얼마만한가의 판단이 먼저 이뤄져야 판단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승자가 되어 최종적으로 공정한 경쟁규칙을 만들기 위해서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경우, 또는 이런 불공정한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탐욕을 모두가 버리게 하기 위해 자신이 승자가 되려하는 경우와 같은 때에도, 그 과정과 최종적 이익의 크기를 비교한 뒤 그것이 클 때에만 허용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만일 쌍방주체가 모두 자신의 이익 행복 만족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는 전체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쌍방이 모두 동일하게 무익하다. 어떤 주체가 승리를 차지하든, 그 주체 외는 이익을 갖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실상 그런 경쟁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 경쟁을 통해 얻으려는 행복은 그 대상을 차지함으로써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함으로써도 얻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선한 방편은 경쟁에 참여하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이가 이런 식의 경쟁에는 참여하지 않도록 이런 무익한 경쟁과 승리에 대한 탐욕을 버려서 만족을 얻는 방안을 알려주는 것이 선한 자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선악판단을 통한 희망의 선택 결정

희망의 실현 포기를 선악판단을 통해 결정하려고 할 때, 또는 추구하고자 하는 희망을 선악판단을 통해 결정하려고 할 때, 선한 희망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경쟁관계에 놓인 희망과 그렇지 않은 희망의 경우 선악판단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조금은 다르다. 경쟁관계에서는 희생될 일방의 이익과 함께 경쟁과정과 결과를 통해서 전체이익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를 모두 고려해야만 선악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쟁관계에 놓이지 않는 희망은 주로 개인적이고 고립적인 희망이어서 단지 그것이 장래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헤아림으로써 선악판단이 조금 덜 복잡하게 된다.

여기서는 경쟁관계에 놓인 희망도 선한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밝힌 점에 의미가 있다. 경쟁관계에서는 어떤 누군가는 희생된다. 그런데 자칫 이런 점만을 의식하게 되면, 경쟁관계의 희망은 어느 경우나 처음부터 선한 희망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에 참여할 때는 경쟁관계는 사회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선한 행위가 된다. 따라서 희망의 선택과정에서 이를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희망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경쟁관계를 포함하여 비경쟁관계에 놓인 희망의 종류 역시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서 어떤 희망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경쟁관계 비경쟁관계를 막론하고 위와 같은 선악판단을 먼저 행한 다음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 때 그 때의 시기 상황과 맞추어 다시 가능성 여부 용이성 여부 등을 판단하여 구체적인 희망을 선택 결정할 문제이다.

++ h01 수정시작 2000년05월01일(월)23시23분 +

원문참고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려면 추구하는 희망을 선택할 때부터 가치 있는 희망들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물론 희망과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서로 일치되지 않을 수 있다.

++ h20 수정추가시작 2000년10월20일(금)21시41분 +

희망은 가치없는 희망들을 추구했는데 결과는 의외로 가치있게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그저 놀리려 했는데 상대가 그런 놀림을 받고나서 이를 통해 분발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또는 그 반대로 가치있는 희망을 추구했지만 결과는 가치가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순수히 정성을 다해 치료했는데 그만 치료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경우와 같다.

이와 같은 점들과 같이 희망과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삶에서 서로 어느 정도로 관련이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별도로 살펴볼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단 희망과 그 희망을 추구한 결과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마음안의 상태와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상태 가운데에서 외부적인 면만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마음의 상태는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음 속에는 증오와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겉으로 미소와 예의를 갖추어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 상대방을 해치려는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겉으로는 친근한 것처럼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현실생활은 마음 속 깊이 우러나는 친절과 호의에서 서로 만나고헤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속으로 싫어도 친한 척 해야만 하고 또 속으로 멸시하고 싶지만 겉으로는 존중하는 척 행위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 속의 상태 희망등은 어떻던지 간에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가치 있는 상태가 된다면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 있는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반드시 가치 있는 결과를 얻어야 할 필요성 때문이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희망대로 모든 것이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또 희망이나 마음안의 상태는 자신안에만 감추어 두고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겉을 다르게 위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안에 그려서 담아두고 있는 그 희망 자체는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나 겉모습과는 일단 별도로 가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희망을 갖는 그 순간순간의 마음 자체가 그 자체로서 (결과와는 별도로)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일정한 행위와 결과를 이끌어주는 최초의 요소가 된다. 따라서 가치를 지향하는 일정한 행위과정의 기초가 되어주는 요소가 되기 위해서 그 희망은 가치있는 희망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희망과 과정 결과가 모두 가치 있는 상태로 일치되는 상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완전히 일치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라도 그러한 가치 있는 결과를 얻는 데에 관련될 수 있다면 그런 점에서 희망은 역시 가치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가치 있는 희망등을 선택하고 추구해야만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과거의 상태가 가치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과거는 변경시킬 수 없는 상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것을 후회하거나 자책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읺는다. 단지 그로 인해서 불만의 상태에 잠겨 있게 되고 그런 불만감은 자신에 대한 파괴적인 성향만을 갖게 되어 더욱더 가치 없는 상태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과거의 무가치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앞으로 더 가치가 있는 삶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런 면에서는 무가치도 역설적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무가치한 과거의 상태에 대해서는 그 가치 없는 상태가 반대로 가치를 발견하게 만들어 준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거나 더 가치 없는 상태와 비교를 한다거나 또는 잊어버린다던지 함으로서 위안을 삼고 한편으론 과거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 과거가 무가치 했던 만큼 더욱더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듦으로서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상태로 끌어 올려야만 한다.

그런데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가치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한 걸음만 다가서면 우리는 정확한 대답을 하는데 곤란을 겪게 된다.

앞에서는 가치 있는 것을 단순히 정의로운 것 옳은 것 도덕적인 것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 등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가치는 그러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정의와 선(善) 등으로 가치를 한정하더라도 그 내용을 정의하는 데는 힘든 문제가 있다. 정의와 선은 대부분 사람이 추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정의 옳음 도덕 선등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공통되게 인정하는 확실하고 명백한 내용을 찾기 힘들다.

우리가 이런 부분에 대햐여 구체적이고 명백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가치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알맹이가 없는 공허한 주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가치를 자세히 논하는 것은 행복론의 범위를 넘는다고 햐야햐 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결론적인 내용만 간단히 보고 가기로 한다.

이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은 단순한 만족이 아닌 가치 있는 만족을 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치 있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는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행복을 주구하기 위한 행복에 대한 규범적인 설격을 갖는 논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행복의 규범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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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다음파일로 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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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앞으로 가치 있게 만들려면

욕구의 선택단계에서부터

가치 있는 욕구가 선택되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가 욕구의 선택단계부터 가치 있는 욕구 등을 선택하고 추구해야만 그 결과로서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 전개되어질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하 다음파일로 합침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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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38

2)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01

3)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04

4)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14

5)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10

6)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07

7)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07

8)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94

9)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80

10)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04

11)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84

12)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78

13)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28

14)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19

15)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28

16)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32

17)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52

18)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73

19)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80

20)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96

21)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57

22)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60

23)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71

24)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75

25)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79

26)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84

27)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85

28)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86

29)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97

30)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97

31)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405

32)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406

33)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428

34)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73

35)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74

36)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67

37)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37

38)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76

39)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56

40)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34

41)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60

42)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14

43)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43

44)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40

45)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69

46)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7

47)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8

48)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26

49)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85

50)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09

51)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1

52)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17

53)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50

54)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17

55)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18

56)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22

57)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17

58) 박성철 엮음, 『세계명언집 인생의 의미』(서울: 자유문학사, 2004) p.30

59)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 계선편,공자가어(孔子家語)》〈재액(在厄)〉 第二十

60)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 계선편,《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선주유비전(先主劉備傳)〉“勿以惡小而爲之하고 勿以善小而不爲,《소학(小學)》〈가언(嘉言)〉“勿以善小而爲之하고 勿以惡小而不爲하라”

61)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 계선편,_이 글은 《장자(莊子)》에 보이지 않는다. 이《명심보감(明心寶鑑)》에 ‘장자왈(莊子曰)’이라 수록된 글들은 모두 《장자》에 보이지 않으니, 작자가 어디에 근거하여 채록한 것인지 알 수 없다.

62)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 계선편,_태공(太公)의 저술이라고 하는 《육도(六鞱)》나 《삼략(三略)》에 보이지 않는 글이다.

63)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 계선편,_사마광(司馬光)의 가훈(家訓)으로 짐작된다.

64)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 계선편,

65)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 계선편,《논어(論語)》〈계씨(季氏)〉 十一章

66)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2. 천명편, 《증광현문(增廣賢文)》

67)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2. 천명편,《논어(論語)》〈팔일(八佾)〉 十三章

68)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7. 존심편

69)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1. 성심편 상

70)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2. 성심편 하,

71)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12. 성심편, 《주자대전(朱子大全)》卷第七十四 〈잡저(雜著)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 《논어(論語)》〈안연(顔淵)〉 二章, 〈위령공(衛靈公)〉 二十三章, 《맹자(孟子)》〈이루장(離婁章)〉上 四章

72) 성백효역, 『현토완역 명심보감』(동방미디어) 21. 증보편,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下 五章

73)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958.

74)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23.

75)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26.

76)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31-1134.

77)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35.

78)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074.

79)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16.

80)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48.

81)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65.

82)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724.

83)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746.

84)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749.

85)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750.

86)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770.

87)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850.

88)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702.

89)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704.

90)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634.

91)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640.

92)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664.

93)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556.

94)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561.

95)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515.

96)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516.

97)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519.

98)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463.

99)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452.

100)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415.

101)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426.

102)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345.

103)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391.

104)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228.

105)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226.

106)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228.

107)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229.

108)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230.

109)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230.

110)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98.

111)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63.

112)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67.

113)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51.

114)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51.

115)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52.

116)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53.

117)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8.

118)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9.

119)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25.

120)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29.

121)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111.

122)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89.

123) 똘스또이, 채수동 고산 역, 『인생이란 무엇인가』(서울: 동서문화사, 2004) p.94.

124)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40】

125)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lifedu.edunet4u.net/lifedu/insung/) Ll02140w.hwp

126)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03】

127)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lifedu.edunet4u.net/lifedu/insung/) Ll02003w.hwp

128)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12】

129)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13】

130)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24】

131)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46】

132)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48】

133)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lifedu.edunet4u.net/lifedu/insung/) Ll02048w.hwp

134)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52】

135)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lifedu.edunet4u.net/lifedu/insung/) Ll02052w.hwp

136)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lifedu.edunet4u.net/lifedu/insung/) Ll02052w.hwp

137)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60】

138)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67】

139)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75】

140)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lifedu.edunet4u.net/lifedu/insung/) Ll02075w.hwp

141)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85】

142)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89】

143)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91】

144)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93】

145)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95】

146)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097】

147)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01】

148)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10】

149)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12】

150)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25】

151)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38】

152)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42】

153)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50】

154)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54】

155)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56】

156)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61】

157)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64】

158)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173】

159)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218】

160) 안상길 편역, 『채근담』 (인터넷파일; http://www.yetgle.com/chaigun.htm) 【전집 218】

161)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팔일 ; 제13장

162)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이인 ; 제16장

163)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공야장 ; 제25장

164)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옹야 ; 제28장

165)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옹야 ; 제28장

166)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자한 ; 제26장

167)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태백 ; 제4장

168)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안연 ; 제16장

169)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위령공 ; 제8장

170) 성백효역, 『논어집주』(동방미디어) 논어 ; 계씨 ; 제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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