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데이트 2008년-2-16일 + ++ 업데이트 2008년-2-20일 + ++ 업데이트 2008년-3-01일 + ]] ●> 행복한 가운데 최상의 향상의 추구 4. 목표점으로서 ‘최상의 행복’의 상태 가. 최상의 요소 지금까지 길게 살핀 것은 한 주체가 최상을 향해 나아갈 때 어떤 것을 최상으로 판단하고 선택해가야 할 것인가를 살핀 것이었다. 삶의 형태에는 구체적으로 다양한 상태가 있다. 그렇다면 목표로 할 가장 최상의 상태는 어떤 상태라고 할 것인가? 사람이 갖는 희망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있어서 모든 욕구나 수단은 최종적으로 그 주체의 행복에 이바지할 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한 주체에 있어서는 가지가지 상태들은 그것이 최종적으로 행복을 줄 때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복이 최상의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이런 행복은 행복의 양이 얼마나 크고 오랜기간 지속하는가 또 그 구성요소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순환하는가로 우열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이들 행복에는 선한 행복, 악한 행복 등의 형태가 있으며, 그 가운데 선한 행복이 가장 최상임을 보았다. 여기서 선(善)을 일반적으로는 다시 얼마나 많은 주체에게 또 얼마나 많은 기간 동안 또 어떤 종류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등으로 다양하게 우열을 나누어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주체와 관련해서는 그가 실현가능한 최상의 상대적 선에 이들은 이미 평가되어 포함된다. 그것은 한 주체가 선택할 때 가능한 가장 많은 주체에게 가장 오랜 기간 좋음의 차이[좋음-나쁨]를 주는 것을 선이라고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선한 행복의 상태는 그것이 실현되는가 안 되는가에 의해 달리 평가받을 수 있다. 또 지혜는 좀 더 선한 뜻을 선택하게 하고, 그리고 그 뜻을 보다 쉽고 빠르고 희생이 적으며 선한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앞에서는 선-실현-지혜-행복이라는 각 요소가 골고루 갖춰진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제시하였다. 이들은 우리가 목표로 삼아 나아가야 할 최상의 상태가 갖춰야 할 요소들이다 이를 풀어서 최종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어떤 상태와 그 실현방안 및 그 영향이 가장 상대적으로 선(善)한가. 어떤 한 주체가 최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자.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에게 분명한 내용부터 최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마음속의 뜻부터 가장 선한 상태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한 주체는 행위-결과-영향의 측면에서 가능한 가장 많은 주체에게 가장 오랜 기간 좋음의 차이[좋음-나쁨]를 가져다 줄 상태를 선택하겠다는 마음자세[선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은 매우 추상적이고 막연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현실에서는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희망 가운데에서 가장 이에 가까운 것을 선택해 실현해야 한다. 또는 자신의 기존 희망을 이런 내용이 되도록 변경하여 실천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부를 추구해왔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선한 방법으로 부를 추구하겠다는 형식으로 희망을 변경시켜 추구해 가야 하는 것이다. ② 그 상태를 노력해 실현하는 것이 다음이다. 그 방식은 마음상태 쪽의 변경일 수도 있고, 객관상태에서의 변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주관 객관상태가 모두 이와 일치하게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③ 그러한 목표설정과 실현방안에 있어서 가장 진리에 들어맞게 지혜롭게 실현해야 한다. 만일 이런 지혜를 갖추면 갖출수록, 추구하는 뜻은 좀 더 질적으로 가치있고 기간적으로 길게 유지되며, 그 성취과정에 드는 노력과 비용, 불쾌감은 줄어들고, 빨리 잘 그리고 선한 방식으로 성취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지혜는 선한 뜻에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악한 뜻에도 똑같이 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지혜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것이 선한 뜻의 실현에 이바지 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④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 주체의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 과정 모두에서 그 주체는 가장 질 높은 행복을 얻어야 한다. 이는 곧 만족, 기쁨, 즐거움, 보람, 가치감, 평온, 안정, 희망을 그림, 의욕 등의 상태가 골고루 갖춰진 행복을 의미한다. 또 이 과정은 전체적으로 좋음과 나쁨의 차이를 많이 가져다 줘야 한다. 따라서 되도록 행복한 가운데 출발하여 또 다른 행복을 얻는 방식으로 즐겁게 추구하여 희생과 비용[불쾌]이 가능한 없어야 한다. 이상으로 최상의 상태에 대해서 보았다. 이를 압축하면 선한 상태의 실현을 지혜롭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과 같이 선한 상태의 실현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한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한 개인이 어떤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각 개인마다 상황마다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최상의 상태라는 말에서 우리는 어떤 신비하고 환상적인 어떤 극한의 상태를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객관적 상태가 어떤 선한 행복의 상태이든, 주관적으로는 단순히 일반적인 행복을 얻는 상태가 될 뿐이다. 그것은 행복에 대해서 살피면서 이미 보았지만, 결국 만족감, 감사할 때의 느낌, 즐거움, 기쁨, 보람, 가치감, 평온감, 안정감, 의욕, 희망을 그려감 등이다. 단지 그것이 객관적으로 선을 추구하고 실현한 상태에서 얻어진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선한 행복이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좋음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고는 볼 수 없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며, 또 양적으로 다른 일반적인 좋음보다 몇 배 강한 것도 아니다. 또한 이런 정신적 내용은 외부에 수치로서 드러나지도 않으며, 또 마치 옷에 단 번쩍이는 훈장처럼 남들에게 보여줘 과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잠깐의 감정들의 연속에 불과하다. 아무리 극한의 선을 성취시켰더라도 최종적으로 정신이 얻는 느낌들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보통의 좋은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예를 들어 100억의 재산을 얻은 사람이 100 원짜리 장난감을 얻은 꼬마가 느끼는 즐거움의 몇 만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최상의 상태를 성취시켰다고 하여 어떤 극한의 느낌을 맛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악한 일을 하여 어떤 이가 기뻐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가 이 대신 몇 100배 선한 일을 하였다고 하여 그 좋음의 느낌이 몇 100 배 강하다거나, 그 만큼 오래 지속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최상의 상태를 향해 나아갈 때도 그런 것을 얻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야 한다. 선한 행복을 성취하더라도, 단지 일반적인 좋은 것들을 대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좋은 느낌을 얻게 될 뿐이다. 우리가 좋은 느낌 예를 들어 만족을 구체적으로 살피면 정확이 이 느낌이 어떠한지 말로 정확히 묘사하기는 힘들게 된다. 따라서 단지 일상의 다양한 경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좋음을 나열하여 그 때 느끼는 감정을 되살려서 좋은 느낌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부상이나 고통이 나아 사라질 때, 의무로 해야만 할 일을 다 마칠 때, 잠이 올 때 잠을 잘 수 있을 때,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생리적으로 배설을 해야만 할 때 배설을 할 때, 남을 위해 봉사할 때, 자신이 알고 싶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혼자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게 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게 될 때, 기타 자신이 오래 바라던 것을 드디어 얻어 성취했을 때, .... 등등의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들이다. 이들에서 얻는 좋은 느낌이란 어떤 것은 좀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또 그 좋은 느낌들은 각 상황이 주는 감각과 관념의 배경과 혼합되어 정신에서 얻어진다. 따라서 정신 안에서 이들 감정만을 빼내어 유형화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각 상황마다 달라지는 배경의 감각내용과 관념내용을 빼서 좋은 느낌만을 비교해본다면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고 해야 한다. 여하튼 이들 단순한 좋은 감정을 주는 가지가지 상황을 다 나열해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우리가 매우 졸리워서 잠을 잘 때, 또는 참았다가 생리적 배설을 해야 할 때를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 가장 화려하고 가장 뛰어난 모든 것들을 대신 줄테니 그것을 한 한 시간만 참고 하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대신 선택하고 참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얻더라도 일단 잠을 자거나, 배설을 하고 나서 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모든 선택 가능성에서 가장 최상위의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겠지만, 본능적으로 이런 것들이 최상의 것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본능적으로 그런 최상의 것을 선택하였더라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평범하게 좋은 것뿐이다. 즉 최상의 상태를 선택해 실현해도 우리가 최종적으로 얻는 느낌은 그처럼 평범한 것이다. 물론 만일 이런 사실을 반대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즉 이런 사실을 반대로 말하면 일상에서 평범하게 지나치게 되는 선하고 좋은 것들에서 자신이 지금 지상에서 가장 최상의 것을 얻어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는 늘 평범한 것들에서 최상의 가치를 얻어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상의 선한 행복을 성취할 때의 느낌들도 앞에 나열한 경우에서 얻는 평범한 좋은 느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결국 정신이 느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좋은 느낌을 갖는다. 이는 마치 아무리 그것이 아름답더라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빛과 색깔 범위 안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무리 최상의 것이더라도 우리의 정신에서는 결국 감각과 관념과 감정이 얻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얻게 될 뿐이다. 따라서 최상의 선한 행복의 상태에서는 보통의 좋음과는 달리 어떤 가장 극한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이런 상태에서는 기존의 좋음에서 맛보지 못한 좋음을 얻을 수 있고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변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것은 끝내 이루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선한 행복의 상태가 최상이라는 것은 단지 어떤 평범한 좋음의 상태가 다른 모든 주체들에게도 역시 유사한 평범한 좋음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래간 줄 수 있는 상태가 최상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행복의 느낌을 반대로 악한 불행의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과 대비할 때는 그 가치를 조금 뚜렷이 알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불만, 고통, 욕구 불충족, 좌절감, 실패감, 낙담, 억압, 싫음, 혐오, 미움, 질투, 시기심, 성남, 분노, 슬픔, 억울함, 한, 회한, 우울, 불만스런 과거의 기억...불쾌, 짜증, 혼란, 혼돈, 부조화, 갈등, 번뇌, 번민...자책감(自責感), 후회감, 양심가책, 죄의식, 수치심, 부끄러움, 소외받음, 따돌림당함, 미움과 질투, 시기를 받음, 비난, 제재, 벌 등을 받는 상태의 불쾌감, 무의미함, 건조함, 허무감, 괴리감(乖離感) 박탈감, 이질감(異質感)....긴장, 강박감, 침체(沈滯), 불안, 초조, 들뜸[掉擧]...걱정, 근심, 두려움, 무서움, 겁냄, 공포, 비관, 절망, 의욕상실, 무의욕, 무희망, 물림, 질림, 무력감, 권태, 심심함, 무료함, 따분함, 안달, 애태움, 긴장 강박감 등의 상태에서의 희망추구, 의무감, 탐욕...등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앞에 나열한 선, 뜻의 실현, 지혜, 행복 등의 여러 요소를 갖추고 또 이를 추구하는 상태를 최상의 상태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 말은 이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는 전혀 생각해낼 수 없다는 의미에서 최상이라고 함은 아니다. 만일 한 주체가 선택 가능한 범위, 그리고 인과관계로 관련된 범위를 떠나 생각하면 더 가치가 높은 상태를 무한히 벌려 세울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의 최상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현실모습 가운데에서 이 상태가 가장 최상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여기서 최상은 단지 어떤 한 주체가 특정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것들 가운데에서 가장 나은 최상의 요소를 의미할 뿐이다. 예를 들어 발을 다친 이가 지금 발을 나아 간신이 조금 걸을 수 있다고 하자. 그런 상태가 자신이 과거에 뛰어다녔던 상태나 마라톤 선수의 건강 상태보다 나은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이라고 해야 한다. 단순한 여러 현실 가운데 무엇이 최상이라는 판단은 한 주체에게 현재 선택 가능한 내용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여기서 의미를 갖지 못하므로 제외하게 된다. 또 현실의 기초를 떠나 상상을 한다면 이 보다 더 나은 상태를 관념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현실의 한계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최상과는 관계없다. 왜냐 하면 이는 그 주체가 선택해 실현 가능한 사항이 못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어떤 최상의 상태를 판단하는 것은 그런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실현해가기 위함이다. 따라서 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한 우열판단은 배제된 것이다. 그 결과 또 앞에서와 같은 요소들이 최상의 상태라고 제시된 것이다. 결국 한 주체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여기서 제시하는 최상의 선택요소는 그 자신의 희망이나 막연히 그리는 최상의 상태와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사람은 수백억의 재산을 갖고 막강한 권력을 갖고 사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주체가 선택할 최상의 선택은 선의 실현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해 나가는 것이며, 거기에 들어맞는 현실의 구체적인 요소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선택방향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 점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 이상은 다음의 전체적인 글의 일부입니다.無名 著, <가칭><<최상의 행복 총론>>, 목차 이 글들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완전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교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종 완성되기 전에 미리 여러분의 거리낌 없는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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