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행복, 선(善), 뜻의 실현의 상호관계

++ 업데이트 2008년-1-18일 오후 5:49 +

++ 업데이트 2008년-1-22일 오후 6:59 +

여기서는 1차적으로 어떤 주체의 행복 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실제 어떤 뜻에 일치하는 객관 상태가 실현되어도 ‘좋음’이 얻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어떤 뜻에 맞는 상태가 성취되면 그 부분에서는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뜻의 성취상태가 곧 행복과 동일시되지 않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정 때문이다. 우선 어떤 상태가 실현되었는데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원하던 집을 장만했는데, 새집에 하수도가 막히거나, 난방시설이 고장나거나 하여 불편하게 되는 경우와 같다.

또 실현된 상태에 집착하다 보면 이미 이룬 상태가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또 어떤 상태가 막상 실현되면 이후에는 그전까지 희망을 그려가던 때와 달리 허무감을 느끼거나, 의욕이 사라지고 권태를 느낄 수도 있게 된다. 또 어떤 상태가 실현되어도 또 다른 희망들이 다시 생겨나 불만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집을 장만했는 데 이제는 좋은 자동차를 갖고 싶다고 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상태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외부상태가 거의 극한적으로 충족되어진 상태를 상상해보자. 예를 들어 광대한 땅을 차지한 황제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이제 이로써 행복이 완전하게 얻어진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이런 상태라도 다시 더 큰 욕망을 품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외부적 조건의 충족이 제한되는 것과는 달리, 정신세계에서 욕망은 거의 제한 없이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한한 욕망에 비교하면 아무리 극한에 가깝게 성취시킨 상태라도 늘 작게 느껴지는 법이다. 득롱망촉(得隴望蜀)이란 고사는 이런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중국 후한 광무제 유수(劉秀)는 한나라의 왕족이긴 하였으나, 한나라가 신(新)에 의해 멸망한 때, 그는 일개 평민의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후에 뤄양[洛陽]에서 한왕조(漢王朝)를 재건하여 왕이 된다.[AD 25] 그리고 유수는 당시 각지에 할거하고 있던 세력들을 하나씩 모두 정벌하여 중국대륙의 땅을 거의 다 차지하고 아직 농서와 촉만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농서 지방을 얻게 된다. 이 때 유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람은 만족할 줄 몰라 이미 농서를 평정했는데 다시 촉을 바라게 되는구나. 군사를 출동시킬 때마다 그로 인해 머리가 희어진다(人固不知足 旣平隴復望蜀 每一發兵 頭髮爲白)”

사실 일개 평민의 지위에서 왕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그리고 왕이 돼서도 그토록 갈망하던 농서땅을 다시 차지하니 또한 만족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유수가 스스로 한탄하며 말하듯,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고 또 다시 차지하지 못한 촉 땅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욕망은 무한해서 아무리 많은 것을 차지해도 욕망은 끝이 없어, 이를 다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결국 아무리 많은 뜻을 실현해도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끝없이 불러 일으켜 번뇌를 만들 수 있고, 또 한편 이루어진 상태가 언제 무너질까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불안해할 수 있다. 또 뜻이 이뤄진 후 욕망의 실현에 허무감을 느끼고 이젠 의욕이 사라져 권태를 느낄 수도 있고 또 보다 큰 욕망이 언제든지 나타나 이로 인해 불만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실현된 상태에 만족이나 감사를 느낄 줄 모르고, 번뇌, 걱정이나 두려움, 권태, 불만 등에 싸여 있게 되면, 이런 마음상태를 가진 이에게는 어떤 외부적 조건의 실현도 행복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태가 실현된다고 하여 곧 행복이 얻어진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반면 어떤 객관 상태가 성취되지 않더라도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비록 희망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감사해하고, 희망을 그려가며 즐거워하며, 그 희망의 실현 과정자체에서 즐거워하며 또 한편 그 실현을 굳게 믿는 경우 등이다.

이런 두 경우에서 만일 한 주체만을 놓고 보면 ‘어떤 객관 상태가 성취되지 않더라도 행복을 얻는 상태’가 더 낫다고 해야 한다. 왜냐 하면 어떤 객관 상태를 추구한 것은 본래 행복을 얻기 위함이었고 행복이 얻어지지 않는 상태의 실현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어 한 주체의 입장에서는 칭기즈칸처럼 온 세계를 정복하고 온갖 재화를 다 소유하고, 또 장수한다 하더라도 만일 그 상태에서 행복을 얻지 못한다면, 허름한 집에서 병든 몸으로 짧게 살다 죽더라도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살다가는 상태가 더 낫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어떤 객관 상태를 단순히 성취함을 최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생각해보면 어떤 상태는 그것을 성취시키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술이나 도박 마약 등과 같이 일시적으로는 즐겁지만 장기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경우가 그 하나다. 또 다른 생명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등으로 악한 상태를 실현하는 경우가 또 다른 하나다. 이처럼 어떤 상태나 그 실현과정에서 장기적으로 행복을 감소시키게 되거나, 다수 주체가 장기간 많은 손해와 불쾌를 얻게 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성취하지 않는 상태가 더 낫다고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에서 행복이 어떤 단순한 객관상태의 실현보다 더 나음을 보았다. 그런데 어떤 뜻의 실현으로 장기적으로 행복이 감소되면, 원래 상태를 실현하여 추구한 본 목적에 위반된다.

또한 앞에서 선(善)은, 자신을 포함하여 가장 다수의 주체에게 가장 많고 가장 오랜 기간의 행복을 주는 상태, 그리고 타 주체가 선의 실현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상태, 그리고 이런 상태를 남도 좋고 나도 좋은 방법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결국 선은 행복이란 요소가 주체면에서 그리고 질(質), 양(量) 기간(期間)적인 면에서 겹쳐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행복이 단순한 객관상태의 실현보다 낫다고 보았다. 그런데 선은 그런 행복이 중첩된 상태이므로 당연히 선은 단순히 뜻이 실현된 상태보다 나은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또 행복과 선과의 관계에서는 같은 이유로 선이 행복보다는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결론은 자신의 개인적 행복과 사회적 선이 충돌할 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갖는다. 왜냐 하면 순수히 개인적인 입장에서만 보면 자신의 행복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장 최대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 입장에서 냉정하게 판단하면, 한 개인을 넘어 다수 주체의 높고 많은 장기간의 행복을 실현하는 선이 더 가치를 갖는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이제 행복과 어떤 뜻의 객관적 성취 사이에서는 어떤 것이 상위의 가치를 갖는다고 할 것인가?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순수하게 주관적인 면만 기준으로 한다면, 앞에서 본 이유로 행복의 성취를 더 상위에 놓아야 한다. 그런데 다수 주체와 관련되는 객관적인 면을 기준으로 할 때는 이렇게 단순하게만 평가를 할 수 없다. 어떤 객관적 상태는 또 다른 주체들의 행복과 관련되고 다시 이를 기초로 선의 평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본 것처럼 선(善)이 행복 보다 우선한다고 한다면, 어떤 상태의 실현이 선의 실현과 관련되면, 그로 인해 객관적 상태의 실현은 행복에 우선하게 된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상태가 선의 문제와 관련되지 않고 한 주체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오로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가치 밖에 갖지 못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행복이 더 우선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선과 행복의 관계 그리고 어떤 상태의 실현이 이들과 갖는 관련성을 함께 고려해야 해결될 수 있다.

여기서는 이런 이유로 선 - (선한) 상태의 객관적 실현 - 행복 - [단순한 상태의 실현]의 순으로 우선 순위를 제시하기로 한다.

그런데 사실 어떤 뜻의 객관적 실현이 선한 경우에는, 선과 (선한) 상태의 실현이 선을 두 번 중복해 나열하는 면이 있다. 선은 이미 선한 뜻의 실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래서 선(善)과 ‘선한 상태의 실현’이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선의 본래 의미는 선한 뜻을 가져 선한 상태의 실현함을 함께 의미한다. 따라서 선- 상태의 실현의 순서로 나열하는 것은 앞에서 보듯 일부 의미가 중복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원래 처음에 행복 또는 선의 실현상태와 어떤 객관적 상태의 단순한 실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가가 문제시되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에서 선 - 상태의 실현의 순위를 나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열에는 또 다른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도 함께 포함시켜 순서가 배열된 것으로 이해하기로 한다.

우선 선한 뜻이 실현되어지는 상태를 자세히 보면 다양한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처음부터 선한 뜻을 갖고 그 뜻을 그대로 실현하여 성취‘하는’ 상태가 있다. 물론 이런 상태를 가장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선(한 뜻) + (그 선한 뜻에 맞는) 상태의 실현 ]

그런데 선이 성취‘되어지는’ 상태에는 또 다른 경우들도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을 의식함이 없이, 또는 반대로 악을 추구하려고 하는 가운데 어떤 상태를 뜻대로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객관적으로는 선한 상태로 평가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물건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편의를 주게 되는 경우, 또는 남의 물건을 훔쳤는데, 그것을 안 훔쳤으면 사회적으로 더 나쁜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등과 같다. 그런데 이렇게 발생한 그 객관적 상태는 그 행위자의 원래 의식과 별개로 선한 상태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한편 또 선한 뜻을 갖던 나쁜 뜻을 갖던 원래의 의도와 달리 어떤 상태가 실현되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예를 들어 물건을 주으려 했는데 뜻과 달리 떨어져 깨진다거나 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처럼 처음 의도와 달리 실현된 어떤 상태가 결과적으로 선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도 앞의 경우처럼 그 결과만 보면 선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선한 의식없이, 또는 의도와 달리 상태가 실현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선한 객관적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다. [선한 뜻이 없거나, 악한 뜻을 갖는 경우 또는 원래의 선한 뜻과 다른 내용으로 (선한) 상태의 실현 ] 그런데 이런 경우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선하여 다수 주체에게 많은 장기간의 행복을 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단순한 행복보다는 우위에 넣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선한 상태가 실현되는 경우 등은 일단 앞의 경우 즉 처음부터 선한 뜻을 갖고 그것을 실현시킨 경우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별도로 ‘상태의 실현’을 선의 뒤에 다시 나열할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편 선- 상태의 실현은 선한 의사와 결과간의 우위도 나타내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한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다. 뜻은 선하지만 선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한편 뜻은 선하지 않지만 선한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들 사이에 그 우열이 다시 문제된다. 나타난 객관적 결과만 중시하면 결과의 선함을 더 중시할 수 있다. 그러나 목표의 선택과정을 고려하면, 의식의 내용을 먼저 중요시해야 한다. 그래서 의도와 다르게 또는 실수를 통해 선이 실현되는 경우를 더 가치 있다고 평가하기가 곤란하다. 의도와 달리 또는 실수로 결과가 나타나도 결과가 선하면 되니까 마음에서는 악을 추구해도 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선택과정에서 이런 실수를 미리 고려하여 최상의 선택행위를 하라고 할 수도 없다. 예상치 못한 결과나 실수를 통해 선이 실현되도록 선택 추구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선한 뜻을 갖는 것이 최상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선- 상태의 실현의 순위는 선한 뜻이 객관적 상태보다 더 우위를 갖는 의미를 나타내는 기능도 하는 것으로 한다.

한편 선한 뜻을 갖더라도 늘 뜻과 일치하여 선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선- 상태의 실현’의 나열은 선한 뜻을 갖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그 다음 그 상태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별도의 의미도 갖는 것으로 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선한 뜻이 뜻과 같이 실현되고, 실수로 또는 의도와 달리 악한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지혜를 더 발휘하는 것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지혜를 다음 덕목으로 다시 나열한다. [선- 상태의 실현 - 지혜]

한편 여기서 상태의 실현 안에는 비록 의도된 경우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선이 실현되는 경우를 포함시켜 이해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단순한 지혜나 단순한 행복보다는 우위에 있음을 그 배열이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한다.

물론 이런 각기 다른 차원의 의미를 보다 자세하게 분별하여 나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선한 뜻의 실현 - 선한 의사 (선하지 않고 악하지 않은 결과) - ( 선하지 않고 악하지 않은 의사) 선한 결과 - 선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혜 - 단순한 행복 - 선한 의사 (악한 결과), (악한 의사)선한 결과 - 선악에 해당하지 않는 단순히 뜻에 일치한 상태의 실현 - 의도와 다른 단순한 상태의 실현 - 악한 의사로 악한 결과 실현 - 등으로 나열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각 선악의 크기 정도나 행위과정의 선악 등까지 포함하여 더 세세하게 분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번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에서 나열한 의미를 단순히 함께 아울러 표현하는 방법으로 선- 상태의 실현 - 지혜 - 행복의 순으로 간단히 우위를 표현해 나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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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다음의 전체적인 글의 일부입니다.
無名 著, <가칭><<최상의 행복 총론>>, 목차

이 글들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완전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교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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